‘은퇴~’ 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단어가 ‘자유’이다. 직장인들의 하루하루는 가히 전쟁이다. 꽉 막힌 프리웨이에서 벌이는 출근전쟁, 끝도 없는 업무와의 싸움, 상사나 동료들과의 마찰 혹은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 … 전쟁 같은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
그때마다 직장인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은퇴에 대한 기대. 그날의 해방감을 상상하며 “조금만 버티자, 자유의 날이 오리라!”를 되뇐다. 그렇게 수십년, 마침내 은퇴에 돌입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매년 400만명이다. 은퇴 후 그들은 얼마나 자유를 즐기고 있을까.
관련 연구들을 보면 자유 혹은 시간이란 게 묘하다. 너무 모자라도 문제이지만 너무 넘쳐도 문제이다. 자유시간이 넘치게 많은 게 꼭 행복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미국심리학회지에 게재된 한 연구를 보면 자유시간이 늘어날수록 행복감은 높아진다. 없는 시간 쪼개가며 살다가 어느 순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우선 숨 쉬기가 편해진다.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며 숨을 고를 수가 있다. 그런 여유와 행복감은 자유시간이 하루 2시간 정도일 때 최대치에 이른다. 하지만 자유시간이 하루 5시간 이상이 되면 행복감은 오히려 감소한다고 한다. 매이지 않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이다.
은퇴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시간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큰 과제이다. 아무 것도 안 해도 혹은 뭘 하든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냥 빈둥대며 지내다 보면 삶은 무료해지고 우울감이 찾아든다. 여기서 ‘1,000시간의 법칙’이 탄생한다. 일 년에 1,000시간만 의미 있게 잘 보내면 노년생활 성공이라는 것이다.
연방 노동통계국의 미국인 시간사용 설문조사(ATUS)를 보면 보통 성인들이 재량껏 쓸 수 있는 시간은 하루 5시간, 1년이면 1,800시간 정도이다. 하지만 그중 많은 시간은 수동적 활동들로 허비된다.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TV 시청, TV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매일 보통 3시간, 은퇴자들의 경우는 4시간에 달한다. 그 외 셀폰 들여다보고, 의미 없는 모임에 어울리는 등 객쩍게 소비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제대로 활용되는 자유시간은 일년에 1,000 시간 정도라는 것이다. 하루에 세 시간 꼴이다.
은퇴자들은 직장에 매이지 않는 대신 예상치 못한 일들에 발목이 잡힌다. 주로 건강문제나 아픈 가족 돌보기 등. 병원 다니다 보면 한 주가 가고 한 달이 간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면 은퇴자들 역시 온전히 자유재량에 따라 쓸 수 있는 시간은 연 1,000 시간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계산한다. 그 시간을 취미활동, 여행, 자원봉사 혹은 뭔가 새로운 걸 배우는 등 정말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의미 있게 쓰면 노년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1,000 시간의 법칙’이다.
은퇴는 넘치는 자유시간과 함께 익숙한 일상의 붕괴를 동반한다. 수십년 생활의 틀이 되었던 하루일과, 업무, 대인관계, 정신적 자극, 목표 등이 한순간에 없어진다. 할 일 없는 시간이 망망대해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삶의 목적을 새롭게 설정하지 않으면 상실감이나 허탈감에 버티기가 어렵다. 은퇴 후 과도기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76%, 새 생활 적응에 1년 이상 걸린 사람은 5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삶의 뼈대가 될 수 있는 1,000시간. 매일 하루 세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활용함으로써 노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평소 꼭 하고 싶었던 일, 의미와 재미를 주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활기차게 하고, 사회적 연결고리를 유지하며, 지적 자극을 동반하는 활동이면 좋겠다.
인생 후반에 가장 소중한 건 시간이다. 시간이 삶이다. 그 시간에 무엇을 담을 지는 온전히 자신의 결정. 그리고 그 시간에는 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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