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도 어김없이 명예수당이 한국 보훈처에서 보내어졌다. 만 65세부터 시작이 된 적은 수당이 이젠 꽤 많아져 나의 중요한 문화비의 일부가 되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월남전 참전을 한 것도 아니고 국가의 부름에 따라, 오직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주기 위한 파병으로, 내가 지원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차출되었다.
그동안 너무 말이 많았다. ‘브라운 각서’가 이렇고 저렇고… 국가가 미군과 같은 조건에서 모든 것을 조약으로 맺었으니 이젠 그 조약에 따라 계약금(전투 수당)을 전우들한테 반환해야 한다고 꽤나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 영어를 잘 하신다는 분들, 요즈음은 모두 잠잠해졌다. 왜 그럴까?
50년 전 1975년 4월 30일 남부 월남 정부가 패망한 날이다. 이 날을 몇 분이나 기억할까? 대통령은 불란서로, 국무총리는 미국으로…정부의 머리들이 모두 다 도망가고 애꿎은 난민들만 생산해냈다.
보트 피플(BOAT PEOPLES)들이 바다에 버려져 있었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카터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지금 말하자면 ‘천국행의 열쇠’를 잡아 쥐게 되었고 이곳에서도 도움을 받아 우리 한국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72년도 미국에 있었던 나는 71년도에 사이공의 대통령 집무실인 독립궁을 군용 차량으로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 후엔 베트공들이 독립궁으로 쳐들어가 무혈입성 하는 장면들을 기록 TV로 보았다. 착잡하고 참담했다.
한국군은 나름대로 방어를 잘 했건만, 월남전 참전에 대한 후유증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다. 순직에 따른 참전 유공자 미망인들에겐 보상은 커녕, 두 배로 올려 주겠다던 대통령님의 참전명예수당 공약은 물거품이 되었다. 겨우 한다는 보훈처 장관님의 말씀은 “물가에 따라 오르는 만큼 올려준다”는 말뿐이다.
정치판이 혼란 내지 혼잡스러우니 어서 새로운 정부가 태어나서 공정한 월남 참전 명예수당을 받는 것이 80이 넘은 전우들의 소원일 뿐이다. 우리 전우들이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삼고 있는 이상 우리 세대는 영원히 대한민국 코리아를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가고 있음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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