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한국의 정권이 바뀌는 때면 대박 나는 곳이 있다. 난을 취급하는 화원들이다. 대통령부터 저 아래까지 몽땅 바뀌니 난 집에 불이 난다. 지난 98년 DJ가 대통령 됐을 때가 좋은 예. IMF 사태 직후 난 수입도 중단됐던 터라 돈을 줘도 난을 구할 수 없었다. 브래드 피트의 결혼식 때는 캘리포니아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결혼식, 피로연 등에 워낙 많은 난이 들어 마켓에서 난이 사라졌다.
두 에피소드에 나오는 난, 오키드(Orchid)는 종류가 다르다. 서울의 난은 사군자, ‘매난국죽’ 할 때의 그 난을 말한다. LA 난은 이른바 (서)양란이다. 하지만 말만 양란일 뿐 원산지는 덥고 습한 동남아 정글. 화려한 꽃에 매료된 서양 사람들이 가져가 육종, 보급하면서 일본과 한국 등에서 그 난을 양란이라 부를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대시 드림 플랜트(Dash Dream Plant)’의 정태빈 사장이다. 한국에서부터 난을 해 온 그는 경력 40년의 난 전문가. 지금은 LA북쪽, 차로 5시간 거리인 도스 팔로스라는 곳에서 기업형 난 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가도가도 과수원과 농장만 이어지는 샌 호아퀸 밸리에 자리잡고 있다. 인근 한인은 다 합쳐야 20명 남짓.
대시 드림은 한국 농업의 대표적인 미국진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난 하나로 연 2,000만달러 가까운 매출을 올려, 전국 10위 권, 캘리포니아에서는 3위 정도 규모의 난 농장이 됐다. 난을 키우려면 냉난방 시설이 완벽해야 한다. 적정 온도와 습도 유지, 환기는 필수다. 공기가 갇혀 있으면 병이 생기기 쉽다. 온실에 들어서면 살랑살랑 바람이 느껴지는데 곳곳에 설치된 크고 작은 팬들이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온실은 말이 ‘비닐 하우스’지, 덮개가 일곱 겹이나 되는 대형 재배시설. 대부분 한국서 들여온 자재로 한국서 온 기술자들이 지었다. 지금도 농장의 핵심 인력은 정기적으로 한국서 데려온다. 직원은 49명이내로 유지한다. 노동법상 운영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미국 난은 90% 이상 수퍼 마켓을 통해 유통된다. 정 사장네 오키드를 구하려면 트레이더 조스에 가면 된다. 팔리는 난의 60%이상이 이 집 난이라고 한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이 주 거래처로, 코스코에도 넣다가 스스로 그만뒀다. 창고형 판매가 난에 맞지 않았다.
80년대 초부터 서울 근교에서 화훼를 하던 정 사장이 눈을 미국으로 돌린 계기는 IMF 사태였다. 갑자기 난 수요가 사라졌다. 미국에 시장조사를 나왔다. 호접란 가격이 한국의 3배. 미국 진출을 결심하고, LA 인근을 둘러봤지만 땅 값이 너무 비쌌다. 지하수도 문제였다. 바다 밑에서 융기한 캘리포니아의 지하수는 염도가 높다. 땅에 심으면 비도 오고 해서 희석이 되지만 화분 식물인 난은 그게 아니다. 이런 조건들을 따져 머세드 카운티에 30에이커의 땅을 확보했다.
그간 누적 투자액은 1,500만달러 정도, 물은 하루 150톤을 뽑아 쓴다. 지하수를 그대로 쓰지 않는다. 물이 너무 차면 난이 상한다. 연수와 정수 과정을 통해 염분, 철분 등을 걸러낸 후 저장했다가 적정 수온일 때 뿌려 준다. 물 주는 것과 포장은 일일이 사람 손이 들어 간다. 스프링클러로는 잎에 가려 물이 흙에 닿지 않는다. 서슬 퍼런 불체자 단속 때문에 인력난을 겪지 않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무풍지대였다. 농장지대에서 불체자 단속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랬다간 미국의 먹거리가 끊어질 것이란 게 정 사장의 주장이다. 그 역시 영주권이 없다. 투자 비자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판로였다. 메이저 시장은 동양인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은근과 끈기로 수도 없이 두드렸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난은 필요한데 물량을 확보할 수 없을 때가 바로 그 때. 지금은 트레이더 조스 한 곳에만 연 90만 포기 이상 납품한다. 그는 농장 안에 있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수시로 난을 둘러본다. 난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나이 50에 시작한 이민 농업의 성공비결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열대 우림이 고향인 난은 후덥지근한 우기에 몸을 키우고, 살기 어려운 건기에 2세를 퍼뜨린다. 이 때 꽃이 피는 것이다. 자연에서는 건기 때 60~70%가 죽는다. 매년 난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순차적으로 개화시켜 일년 내내 출하하고 있다. 매일 주문하는 거래처도 있다. 선물 받은 난에서 다시 꽃을 보려면 되도록 자생지의 환경을 맞춰주는 것이 요령.
‘일년 내내 꽃에 묻혀 사니 행복하시겠다’는 인사를 듣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곳도 일로 가면 즐겁지가 않다. 경험했던 일이어서 그의 말이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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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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