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광야에서 꿈을 꿨던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가 번화한 애굽의 도시에서 사막으로 밀려나 기약 없이 이민족처럼 살아가다가 어느 날 우연히 가시나무가 불타는 장면을 보고 하나님의 현현을 목격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꿈을 꾼 사람이다. “우연히” 꾼 꿈이 아니라 꿈을 향해 갔기 때문이다. 사막을 걸었으나 가시나무를 태우는 꿈을 소망했던 것이다.
그는 80이라는 나이와 관계없이 꿈을 꿨다. 그 꿈의 구체적 상황이 척박한 사막에서 앙상한 가시나무를 태우는 장면으로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80에도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거기서 신과 대면한 것이다. 나태와 습관적 일상이 점령군처럼 모세를 장악해버린 듯 했으나 그는 늙어가는 자신의 육신과는 관계없이 아주 작은 불씨 하나를 흉중에 남겨놓았던 인간이었다.
그 불씨가 어느 날 타올랐고 그 타오름은 신과의 만남으로 승화되었다. 거기서 그는 신발을 벗었다. 과거와의 결별이었다. 혼자만의 예식을 거행한 것이다. 결국 모세가 조우(遭遇)한 불꽃은 모세의 염원이 가져온 현실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의 공간을 남겨둘 줄 알아야 한다. 비록 그것이 꿈이든 상상이든 공상이든 자기를 때때로 흔드는 불씨가 되도록 남겨두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천지창조의 그림에서 인간과 신의 손가락이 맞닿는 그림은 그림으로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꿈의 현현임을 깨닫기 바란다. 그 꿈의 대상은 항상 젊고 패기 찬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그것을 모세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모세가 꾼 꿈을 우리는 왜 꾸지 못할까. 그릇이 없어서일까.
가진 그릇이 네모라면 거기 담기는 물은 네모의 모양이고 세모라면 세모의 물이 담긴다는 것은 상식이다. 나는 지금 어떤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그릇 자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가 그릇을 빼앗고 나는 그 빼앗김이 당연하다는 듯 그릇 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지.
어느새 메디케어가, 그리고 메디케이드가 늙음을 재촉하는가 하면, 거미줄 같은 법규와 제도, 인간들의 상식이 울타리를 만들었고 그것은 사막이나 감옥보다 더한 체념과 함께 편안함의 올가미를 씌웠다. 그리고 의술의 발달과 쏟아져 나오는 질병의 개발, 가공할 의약품들의 범람이 꿈을 꾸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나약한 인간들은 서서히 도태되고 이제 그 자리에 인공지능을 장착한 우월한 존재들이 해괴하긴 해도 신기한 세상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내가 쓴 장문의 글을 간단한 요약본으로 만들 것을 AI에게 요청했다. 나는 아직 AI에 입문하지 못했으므로 젊은 지인에게 요청했다.
AI는 한 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해 내놨다. 그것은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 이상으로 너무나 잘 정리되었다. 정말 머잖아 가공할 신세계가 우리 인간들 앞에 전개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인간은 이제 꿈도, 그 꿈을 담을 그릇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인간이 신을 찾는 게 아니라 신이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꿈꾸는 인간이 어디 남았나 구석구석을 찾아보셔야 할 시대가 도래(到來)했다.
얼마 전만 해도 “아, 더 이상 힘들어 못 살겠어!” 그러면 왜 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힘들면 그렇게 절망하는지를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친구는 곧장 AI에게 문의를 하고 AI는 답을 줄 것이다. “그래요? 그럼 바하마로 당장 여행을 떠나세요!”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인간은 그 답을 따를지 모른다. 그만치 세상은 단순화 되었다는 얘기다.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이 문명의 해답이다.
이 시대의 늙은 모세는 없다. 80살은 고사하고 70에라도 꿈을 꾸었노라 말하면 치매를 의심하기 십상이다.
유치원 버스는 사라지고 시니어 데이케어 버스가 도심을 누비는 시대에 노인의 꿈 타령이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공간의 세계에서 불타는 가시나무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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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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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것이 '망각'이라했다. 오래전 한국인들에겐 충격적인 '선언적 헌장'문이있었다. 그러나 그 귀중한 헌장문을 그 잘나 똑똑한자가 지워버렸다. 헌장의 첫마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그러나 민주앞세운 그 잘난 김김들은 '민족중흥'을 몰랐고 더군다나 '새역사를창조하자'에 무지몽매하였다. 김반장은 늘말한다. '일인칭이중요하다. 일인칭의 중요함을 깨달으면 그 어떠한시대가 도래해도 두렵지않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