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유튜브에서 이런 감동적인 글을 읽고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특히 후세들에게 인식시키고 싶은 마음에 다음과 같이 소개하는 바다.
지금부터 100년 전 한 젊은 선교사 부부가 미국 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송을 받았다.
이 젊은 선교사 부부는 충남 공주를 선교 기반으로 하여 선교를 시작하였다.
공주에서 첫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한국의 광복을 기원하면서 한국식 이름으로 우광복이라고 지어주었다. 그리고 올리브와 로저라는 두 딸을 낳았다.
1906년 2월 논산지방 부흥회를 인도하고 돌아오다가 비를 피해 상여 간에서 잠시 쉬었는데 바로 전날 장티푸스로 죽은 사람을 장례하고 그 장례 품을 보관해 두었기 때문에 선교사는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졸지에 선교사 부인은 과부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간다.
놀라운 사실은 2년 후 선교사의 부인이 자녀를 데리고 다시 한국 공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공주에 교회를 세우는데 기여를 하고, 47년간 선교사역을 했다. 그런데 두 딸이 풍토병에 걸려 죽었고, 우광복의 여동생 올리브는 11살에 죽어서 공주 땅 영변 동산에 묻힌다.
우광복은 공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나오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나오게 되는데 그때가 바로 일제 식민지 통치에 해방되어 하지 장관이 군정장관으로 한국을 신탁통치 하던 때였다. 그때 영어와 한국말을 능통하게 구사할 사람이 필요했다. 바로 그 사람이 선교사의 아들 우광복이었다.
우광복이 하지의 참모가 되어 한국정부수립에 관여한다. 그때 하지가 광복에게 한국 실정을 잘 아니 앞으로 한국을 잘 이끌어갈 인재 50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우광복은 어머니와 상의한 후에 어머니가 추천해 주는 50명을 하지 장군에게 소개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중 48명 거의 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 수립 때 요소요소에 기독교인들이 들어가서 나라를 세운다. 특별히 문교부 장관에 기독교인이 임명되어 미신타파를 시작했다. 국방부 장관도 기독교인이 되어 군목 제도의 토대를 마련하여 한국군을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제헌 국회의원 모두가 기독교인들이었다. 1948년5월30일 이승만 박사는 이운영 목사에게 기도로 국회를 열 것을 주문한다. 그래서 이운영목사가 기도를 시작한다.
기도 말미에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 하나이다”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이때 기독교인이 전 국민의 5%밖에 안 되는 때였다.
그런데 윌리엄 사모님이 추천해준 50명의 기독교인들이 각 분야에서 영향을 미친 결과 10년 만에 500만이 되고 20년 만에 1,000만 명 성도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우 광복은 1994년 87세 일기로 소천 했는데 “11살에 죽은 내 동생이 묻혀있는 공주 영면 동산 내 동생 곁에 나를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우광복 묘가 여동생 옆에 나란히 있다.
바라기는 이러한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내 나라와 민족이 깨어서 다시 한 번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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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빈/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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