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 관계·관광 활성화 찬물
▶ ‘범죄자 온다’ 현수막·반중 시위
▶ 국가전산망 화재에도 배후 음모론
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일대는 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중추절 연휴(1~8일)를 맞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들은 한복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으며 한국 문화를 체험했다. 인근 식당들은 상호와 ‘연중무휴’를 한자로 쓴 현수막을 내걸고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만난 관광객들의 표정엔 한국 여행을 불안해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중국 푸젠성에서 왔다는 A(31)씨는 “한국에 오기 전에 틱톡 등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국은 위험하다.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봤다. 안전이 염려된다”고 토로했다.
극우 단체를 중심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을 겨냥한 혐오 발언과 음모론이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관광객들에게 불안감과 불쾌감을 주고 있다. 일부 여행사들은 안전 문제를 우려하는 중국인들을 고려해 ‘관광 1번지’ 명동을 여행 일정에서 빼고 있다. 노골적으로 혐중(嫌中) 시위가 벌어지는 장소는 일단 피하고 보는 중국인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가 한중 관계 개선과 관광 활성화를 통한 내수 진작을 위해 유커들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으나 도를 넘어선 행태가 찬물을 끼얹고 있는 셈이다. 내년 6월까지 국내외 지정 여행사가 모집한 3명 이상의 중국인 관광객은 비자 없이 최장 15일간 한국을 여행할 수 있다.
상하이에서 왔다는 장모(40)씨는 “중국 경제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아 형편이 넉넉하거나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만 방한하는 실정인데 이들조차 환영받지 못하고 위협만 느끼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커의 귀환을 한껏 기대한 관광업계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무비자 입국 단체 관광 지정 여행사인 금곡국제여행사 이송아 대표는 “혐중 시위에 더해 최근엔 ‘(중국인) 범죄자들이 들어온다’는 현수막까지 내걸려 걱정이 크다”며 “시위가 있는 명동은 여행 코스에서 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씀씀이가 큰 중국인 단체 관광은 호텔 등 여러 업계에 숨통을 틔워 주는데, (이런 혐중 정서 확산이) 많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지정 여행사 대표도 “중국인을 범죄자로 몰면 누가 한국에 마음 편히 오겠느냐”며 “중국 인터넷만 봐도 ‘한국에 개 취급받으러 가냐’는 얘기가 많다. 이대로 두면 무비자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유커들을 겨냥한 혐중 현상은 최근 들어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무비자 입국 첫날 엑스(X·옛 트위터) 등 SNS에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진 중국인들이 남녀노소 상관없이 납치해 장기매매를 한다’는 내용의 허위 글이 퍼졌다.
극우 세력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에 무비자 정책을 엮은 음모론을 퍼뜨리며 혐중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화재로 인한 국가전산망 마비 사태를 두고 “부정선거를 은폐하려는 시도다” “출입국 시스템 마비로 중국인 범죄자가 입국한다”는 식이다.
정치권마저 공식 석상에서 무비자 입국 중국인 관련 낭설을 거론하며 혐중 정서에 편승하고 있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중국인들의) 불법 체류와 불법 취업이 예상되고 무비자 제도를 악용한 범죄 조직 등의 침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에 ‘무비자 중국인 관광객은 화재로 한때 마비된 전자입국신고서 제출 대상이 아니며 체류 예정지 등 정보를 사전 관리했다’는 설명자료를 냈다. 또 주요 전산센터가 광주에 있어 입국 규제자나 불법체류 전력자 조회에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특정 국가와 국민을 겨냥한 허무맹랑한 괴담과 혐오 발언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며 “백해무익한 자해 행위를 완전히 추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혐중 정서가 ‘위험 수준’을 넘어선 만큼 정부나 국회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관계기관의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적극적 계도와 제재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정치인들이 낭설을 떠들며 주목받지 않도록 언론 등에서 철저히 검증하고 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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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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