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31일 열린다. 특이한 건 유엔 회원국에서 배제된 대만과 홍콩도 멤버라는 점이다. APEC에는 주권국가(countries)가 아닌 경제체(economies)가 참석한다. 그래서 국가라는 명칭을 사용하거나 국기를 게양하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만은 Taiwan 대신 Chinese Taipei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하면 대만과 홍콩은 중국과 연관된 APEC 회원이지 회원국은 아니다.
■ 중국이 고수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른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축구연맹(FIFA)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패권을 다투며 사사건건 맞서는 미국도 이 원칙은 존중한다. 자연히 대만 총통(우리의 대통령)이 APEC에 등장하는 경우도 없다. 경제인이나 중국에 우호적인 관료 출신을 주로 보낸다. 그마저도 시진핑 주석이 외면하는 통에 먼발치에서 손을 흔들다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코로나 유행 당시 방역 모범사례로 꼽힌 대만은 중국의 반대에 막혀 세계보건기구(WHO)에 회원은커녕 옵서버로도 참여하지 못하고 분루를 삼켰다.
■ 온갖 냉대에도 대만은 줄곧 APEC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정작 한반도의 또 다른 당사자인 북한은 빠졌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의장국인 한국이 제안하고 각국이 동의하면 북한 대표가 APEC에 참석하는 데 문제는 없다. APEC은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60% 넘게 차지하는 최대 규모 지역협력체다. 하지만 ‘적대적 두 국가’로 남북관계를 규정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김정은의 막무가내로 인해 정부는 평양에 초청장을 보내지도 못했다.
■ 안방에서 역사적인 잔치를 벌이고도 우리만 여전히 둘로 쪼개졌다. 앞으로 딱히 만날 기약도 없다. 이런 와중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은 두 국가”라며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고 있다. 순진하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바라는 게 아니다. 서로 체제를 인정하더라도 두 국가 논리에 안주하는 건 허망한 일이다. 세계와 연결되는 APEC인데 우리만 단절돼 있다. 뭔가 어색하지 않나.
<김광수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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