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협회 수필수업에서 ‘문학과 국적’에 관한 화두가 있었다.
한 작가가 문학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가 ‘국적 문제’로 선정이 철회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통영을 고향으로 둔 반수연 작가 이야기다. 그녀는 캐나다로 이민했지만, 한국어로 글을 쓰고 한국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낸다.
한국 독자를 향해 출판된 작품이, 단지 저자의 국적이 캐나다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규정되는 현실은 안타깝다. 문학이 한 사회의 언어적 공동체를 확장하는 행위라면, 이민자 작가의 존재야말로 언어의 경계를 넓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문제를 세계의 다른 문학권들은 이미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부커상(Booker Prize) 은 한때 영연방 및 아일랜드 작가에게만 문을 열었다. 그러나 2014년, 영어로 출판된 모든 장편으로 국적과 상관없이 심사받을 수 있도록 자격을 넓혔다.
미국의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s) 역시 2018년 비시민 청원 절차를 도입한 뒤, 2023년 규정을 정비해 시민권 요건을 사실상 폐지했다. ‘미국 시민권자’ 조항이 다양성과 창의성을 막는다는 비판에 귀 기울인 결과였다.
유대인 문학계의 경우는 또 다르다. National Jewish Book Awards는 ‘유대적 주제(Jewish content)’를 기준으로 삼는다. 저자가 유대인이 아니어도, 유대 문화와 역사에 기여한 작품이면 지원 가능하다. 정체성의 혈통보다 ‘이야기의 기여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문학의 본질은 소속이 아니라 발화다. 작가가 어느 나라 여권을 가졌든, 그가 어떤 언어로 세계를 바라보는가가 더 근본적인 문제다. 국적은 행정이지만, 언어는 존재다.
그렇기에 문학 지원 제도도 ‘국적 중심’에서 ‘언어와 문화적 기여 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 한국어로 쓰는 이민자 작가, 디아스포라 작가들은 이미 세계 여러 곳에서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한국 국적의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데 이어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계 캐나다 작가 김주혜는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로 러시아의 야스나야 폴랴나상(일명 톨스토이 문학상) 외국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계 미국인 수잔 최(Susan Choi) 는 『Trust Exercise』로 내셔널 북 어워드를 받았고, 이민진(Min Jin Lee) 은 『파친코』로 아시아 디아스포라의 서사를 세계에 알렸다. 하와이 출신 시인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 은 『Minor Feelings』로 ‘언어적 인종성’과 정체성의 문제를 전 세계 담론으로 끌어올렸다.
이들의 작품은 ‘한국계’라는 민족적 표지를 넘어, 인간과 사회, 기억과 상처, 언어의 보편성을 탐구하는 세계문학적 성취로 평가받고 있다.
문학은 결국 우리 시대의 시민권을 새로 쓰는 행위다. 국경은 행정이지만, 언어는 관계다. 글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세계를 넓히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이미 문학의 시민권자다.
바야흐로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전히 작품보다 여권이 앞서는 문턱이 있는지 궁금하다. 문학의 이름으로 국적을 따지는 제도는, 낡아진 서류 같아서 이제 재검토 할 시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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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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