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을 만나게 될 길조 인가? 보슬비가 내린다. 건조한 알마티(Almaty)시에 비가 내리니 엘에이만큼이나 반가운 손님 같은 비다.
세계 많은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현지에 사는 한인을 만나고 음식점에서 한식을 맛보곤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현지인 한인을 보지 못했다. 공항이나 출입국 관리소에서 일하는 젊은 군인들과 학생 유니폼을 입은 십 대 학생 중에 우리와 같은 얼굴 모습이 있다. 혹 고려인인가하여 마음이 끌려 한국말과 영어로 말을 건네보았지만, 그냥 지나친다.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카자흐스탄의 면적은 한반도의 약 12배다. 인구 천팔백만 명의 130여 민족 중에서 고려인은 0.6%로 소수민족이다. 생활력이 강한 고려인은 교육열이 높고 부지런하고 성실하여 포브스가 선정한 부호도 있고 정계에 진출하여 상,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스포츠, 문화예술, 학계 등 분야에 많이 진출해 있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 약 12만 명 중에 2만 5천 명이 사과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알마티 지역에 산다.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구소련 지역의 한민족인 자랑스러운 고려인이다.
알마티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인 극장(1968년 카자흐스탄에 세운 극장)에 왔다. 분홍색 가까운 살색의 아담한 건물 앞에 한국말로 [카자흐스탄 문화 정보부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이라고 쓰여 있다. 비를 맞으며 닫힌 문을 두드리니 한국말을 하는 직원이 나와 문을 열어준다. 극장 안에는 홍범도 장군 사진과 오래전의 연극 영화 장면 사진, 전통악기, 의상 등이 있다. 1960년대풍 그림의 심청전, 여왕의 눈물, 등의 영화, 연극 광고가 흥미롭다.
1937년 일제 강점기 고향을 떠나 연해주 등 동아시아 지역에 이주했던 고려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기차에 올라 6,600km를 달려 카자흐스탄 동부, 우슈토베에 도착했다. 총 17만 명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지역에 이주됐다. 이들이 바수토베라는 언덕 밑에 토굴을 파고 첫 혹독한 겨울을 살아 남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았다는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 멍해진다. 그들은 집단 농장(콜호즈)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어 벼농사와 여러 농작믈을 심어 공동판매하며 자녀들을 도시로 보내 고등교육을 시켰다. 지금 0.6%밖에 안 되는 고려인을 카자흐스탄을 부유한 국가로 만든 기적의 민족이라고 한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질료니 바자르 전통시장에서 고려인 4세인 40대와 60대의 여인이 주인인 반찬 가계에 들렸다. 그곳에는 고려인 반찬들(함경도식)김치,당근무침과 오이 당근 연어를 넣어 만든 김밥도 있다. 언어는 잊어도 입맛은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러시아어와 카자흐스탄어를 쓰는 반찬 가계 주인은 한국말을 모른다. 우리 민족을 먼 곳 타지에서 만나니 반가워 뜨겁게 포옹하고 싶은 마음뿐, 서로 멀동멀동 쳐다보며 어색한 미소 만 짓는다. 상점에 간장, 된장, 라면 등 한국 음식과 생활용품을 파는 고려인 3세, 60대 잡화상 주인은 고향이 함흥이었다는 조부모로부터 배운 한국말과 글을 잘 읽고 쓴다. 자녀들을 조상의 고향에 보내고 싶다고 한다. 나는 한국말이 서툰 우리 아들과 손주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됐다.
카자흐스탄이 세 나라(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중에서 제일 부자(GDP 12,000)가 되는데 크게 기여한 우리 민족, 고려인의 후예는 어디에 살든지 그들이 가는 곳은 축복의 땅이 되리라.
<
김영화 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