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을 즐기는 찰스 1세’는 안토니 반 다이크가 1635년께 그린 잉글랜드 왕 찰스 1세의 초상화다. 그림 안에서 찰스 1세는 사복 차림에 비공식적인 분위기로, 사냥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언뜻 일국의 왕이라기보다 멀쑥한 신사처럼 보인다. “신사적인 무심함과 왕다운 당당함 사이의 미묘한 절충”이라는 게 루브르박물관의 그럴싸한 묘사다.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첫째, 반 다이크는 이 공들인 초상화의 대가로 200파운드를 요구했지만 찰스는 100파운드(현재 기준 약 3만~4만 파운드)만을 지급했다. 왕실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림 속에서는 절대군주지만 실제로는 화가에게 약속한 금액조차 온전히 지급하지 못하는 왕이었다. 이렇듯 이미지 속에서 권력은 늘 과장되고 미화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권력은 불면증과 신경쇠약으로 점철되고 대체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찰스 1세의 삶이 정확하게 그랬다. 그는 의회 승인 없이 세금을 걷고, 의회를 해산하고, 독단적인 통치를 그치지 않았다. 결국 왕당파와 의회파 간의 내전이 발발하고 승리를 거둔 의회는 찰스 1세를 ‘국민에 대한 반역자’로 법정에 세웠다. 1649년 1월 30일 찰스 1세는 단두대 위에서 공개 처형됐다. 처형이 집행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왕답게 행동하려 했다. 두려움으로 떠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두꺼운 옷을 입고 단두대로 올랐다. 권력 무상이다.
둘째, 찰스 왕의 처형 후 그의 소장품 목록에서 ‘사냥을 즐기는 찰스 1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의미인가. 권력이 사라지면 그 권력을 정당화하던 이미지 역시 빛을 잃고 만다. 권력만 무상한 게 아니다. 권력을 따르는 예술도 덧없기가 그지없다. 하지만 권력이 사라진 다음에도 ‘예술품’은 남는다. 물론 그 의미가 바뀐 채로 남는다. 기념물의 기능은 소멸하고, 권력의 허상을 드러내는 이미지로서다.
<심상용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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