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출신의 캐나다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의 장편소설 ‘적절한 균형’은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각기 다른 계층의 네 사람, 카스트 불가촉천민 출신 재봉사 ‘이시바’와 ‘옴’, 과부 ‘디나’와 그녀의 집에 하숙해서 살게 되는 대학생 ‘마넥’의 간절한 삶을 통해서 인도 카스트 문제와 종교, 인종, 여성문제등, 인도의 현실과 갈등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 중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로스엔젤레스 타임스 소설상’과 ‘길러상’ ‘영연방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전세계 2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소설의 제목인 ‘적절한 균형 (A Fine Balance)’은 엄혹한 역사와 국가의 폭력 앞에서 개인의 삶은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우리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지탱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희망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임을 뜻한다고 역자의 말에 밝히고 있다.
소설의 역사적 배경은 인디라 간디가 선포한 국가 비상사태 체제인 1975년부터 1977년 인도 독립 이전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과 산업화와 근대화로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디나는 재봉사 이시바와 옴을 고용하여 영세 자영업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대학에서 사람과의 갈등에 지친 하숙생 마넥이 그들과 함께 살면서 각기 다른 계층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버리고, 한 식구처럼 서로를 이해하면서 우정을 쌓게 된다.
이시바와 옴은 인도 카스트 제도의 폭력아래 인간의 존엄성마저 박탈당한채 가족과 거처를 잃고 노예보다 못한 힘겨운 일상을 살지만, 그런 삶 속에서도 계급을 벗어나려 열심히 일하며 한끼의 먹을거리와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하루 잠자리만 있으면 행복해한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그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소박한 삶을 꿈 꾸지만, 국가 공권력의 폭력으로 인해 그 작은 꿈도 이루지 못하고 불구의 몸으로 살아간다. 가부장 여성으로 독립된 삶을 꾸려나가던 디나도 결국 집을 잃고 오빠의 그늘에 얹혀 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는다.
소설 속의 다른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인도의 삶은 처절하며 파란만장하다. 투표참정권을 요구하다 생명과 가족을 잃는 불가촉천민 사람들, 국가비상사태에 의문사하는 학생운동가, 구걸을 위해 아이들의 신체를 훼손하는 거지왕초, 신부지참금 문제로 목숨을 끊는 여자들, 폭압적인 관리들과 부정부패한 정치인들……수많은 인물들이 독립을 전후한 인도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슬픔을 증언한다.
소설은 분명 인도의 현실을 그리고 있지만 폭압적인 공권력과 짐승처럼 어디론가 끌려가거나 빈민굴 판잣집 마저 잃고 거리의 노숙자가 되는 가난한 사람들, 개혁과 발전을 이유로 개인의 삶이 신산히 파괴되는 모습들은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이라 그런지 결코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야만적인 국가권력 아래 개인들의 삶은 비극적이며, 작가는 공권력의 폭력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개인들이 살아 남으려는 모습을 실감나고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의 적절한 균형감각은 무엇이며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작가는 소설 속 한 변호사의 “희망이야 항상 있죠. 우리의 절망에 균형을 맞출 만큼 충분한 희망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끝장이죠.” 라는 말로 반복되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것은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재봉질을 하다 남은 조각천을 만지며 말하는 이시바의 “왜 삶은 이렇게 부드럽고 매끄러울 수 없는 걸까?” 라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절망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국가의 폭력과 역사의 비극에 굴하지 않는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진정한 인도의 힘이 있음을 독자들은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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