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 S의 딸 스잔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갑작스런 일에 한동안 나는 망연자실했다. 올해 28세에 수녀가 될 꿈을 갖고 있던 조신한 딸이었다.
스잔의 뷰잉날 연도가 있는 오렌지 성당에 갔더니, 작지 않은 성당이 가득 차도록 조문객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스잔의 아빠가 오래 전 그 성당의 사목회장을 맡았던 적이 있다고하지만, 이 바쁜 세상에 한 처녀의 죽음을 애도해 모인 조문객이라기엔 너무 많은 사람이 었던 것이다. 그런 풍경은 다음 날 장례식도 마찬가지였다. 조문객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으니, 그 중 상당수가 스잔이 봉사하던 청년 성령기도회 멤버와 그 부모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스잔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었다.
스잔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나는 요즘 또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는 청소년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스잔의 부모는 참으로 평범하고 선량하기 그지 없는 부부이다. 우리 동창들이 “법 없어도 살 사람들인데, 하필이면 그 집이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니?”하면서 자기 일처럼 억울해 할만큼 허영이나 가식도 없고, 그저 남을 위해 할 일이 있으면 팔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살아온 착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가. 네 남매가 모두 참 건강하게 잘 자랐다. 누나 장례식에서 막내는 끊임없이 눈물을 닦았지만, 세 녀석 모두 늠름하고 반듯했다. 큰 아들 죤은 엄마의 머리가 바람에 흐트러져 있으니까 다가와서 머리를 손으로 잘 만져주고 갔다. 그 모습이 보기에 얼마나 넉넉하던지….
그러면 S가 네 남매를 잘 키운 것은 무슨 힘이었을까? 언젠가 신문에서 “자녀가 문제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선책은 ‘자녀와의 화해’”라고 나온 글을 읽고 “옳거니!”하며 무릎을 친 일이 있다. 나는 어떤 멋진 수사(修辭)로 설명된 학설이나 이론도 이 말만큼의 진리는 담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네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 하는 일이 바로 부모가 자신을 신뢰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가 성장하려면 반드시 바른 길로만 걸어가는 게 아니다.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절망과 허무를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신의 궤를 이탈했을 때, 더 큰 사랑과 포용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른들은 오히려 소리를 지르고 화부터 낸다. 아이들이 나름대로 노력하고 상황을 개선시켜 보려고 해도 한번 뿌려진 불신의 씨앗은 부모를 고집과 편견 쪽으로 몰고 가기 십상이다. 그럴 때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사람들이 문제아라고 말하는 아이일수록 그 심성은 더 여리고 순진할 때가 많다. 어른들은 아이들 마음을 꿰뚫어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전문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다. 사랑만 있으면 된다. 우리 어른들도 똑같은 갈등과 방황의 시대를 건너왔으므로 아이들의 그 시절에 과녁을 맞추고 열심히 사랑의 화살만 쏘면 되는 것이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태양이었다는 동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브로드웨이 32가를 우범지역으로 몰고 있는 뉴욕시를 원망하는 문제도 그렇다. 우리 어른들이 미국 법을 지키면서 비즈니스를 했다면 뉴욕시가 팔 걷어붙이고 청소 작업에 나서는 빌미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팔고, 술을 팔고, 마약까지 판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어른들이다. 그리고나선 휘청거리는 아이들에게 또 돌팔매질을 한다. 나는 먼저 그런 몰상식한 어른들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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