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간호사 마취기술교육에 헌신
▶ 세계 마취 간호사 컨벤션 참석차 시카고 방문
“Korean people are a very deeply-thinking, spiritual people”
9일 폐막한 2000 시카고 세계 마취 간호사 컨벤션에 참석한 마가렛 콜머(67)씨는 60년대초 한국으로 건너가 마취 기술을 처음으로 보급, 전수한 최초의 외국인 수녀 간호사이다.
위스칸신 성프란시스 병원에서 특수 마취 프로그램을 공부한 콜머씨는 한국에 마취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진 지원, 64년 부산 매리노병원에 첫 발을 디딘 이래 94년까지 30년간을 줄곧 한국내 마취 간호기술 저변확대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전국에 2400개 병원이 있었지만, 마취과 의사만 100명이 있을 뿐 마취간호사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마취가 안돼 환자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 간호사들에게도 마취기술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년후 콜머씨는 매리노병원내 18개월 과정의 마취과 프로그램을 직접 개설했다. 이것이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에서 첫 마취과 프로그램의 시작이다.
“코스과정도 어려웠지만 입학자격도 무척 까다로 왔어요. 일반 간호학을 졸업하거나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등에서 수년간의 경험을 가진 간호사들만이 지원할 수 있었거든요” 72년 첫 졸업생을 냈다는 콜머씨는 마취과장과 마취과 프로그램 총 책임자를 거치면서 매년 3-4명씩의 마취과 간호사들을 꾸준히 양성해 총 40여명의 제자들을 배출했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남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한 콜머씨는 일찌기 수녀가 됐다. 한국에서의 효과적인 의료활동을 위해 한국말을 배웠다. “방학이 되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 달려갔어요. 2년간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방학때 마다 한국말을 배웠습니다” 90년까지 한국인 개인교사를 두고 한국말을 배웠다는 콜머씨는 “한국인들은 상당히 신중하고, 혼을 가진 민족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94년 미국으로 복귀한 콜머씨는 현재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4년마다 1번씩 열리는 국제 마취간호사 컨벤션을 다니며, 한국에서 온 간호사들의 행사 통역을 돕는일에도 빠짐없이 자원봉사하고 있다.
“이젠 건강이 좋아졌어요. 내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콜머씨는 일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이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 60년대 한국땅에 최초로 마취간호사 프로그램을 개척한 마가렛 콜머씨는 피부색은 달라도 아직도 진정한 한국인처럼 일생을 살아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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