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덕할머니, 그림통해 숨겨져왔던 여성 인권 유린 고발
“경상남도 의령에서 살고있던 17세때 처녀 공출에 동원됐어요. 임시 간호원으로 일본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상해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지요.”
김순덕 할머니(80·사진)가 그린 「끌려가는 배 안」에는 당시의 마음이 복합적으로 잘 묘사돼있다. 다가오는 운명을 모른 채 배에 오른 해맑은 얼굴의 한국 처녀 9명과 다소 상기된듯한 일본군 9명의 각기 다른 표정이 나타나 있는 이 그림은 이미 이승을 떠난 정신대 할머니들의 소리없는 한이 배어나온다.
“정조를 잃고도 생존해 있는 수치심으로 3년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고향 땅을 밟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을 잊도록 노력하며 여관집에서 빨래, 청소 등을 하며 서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근근히 식생활만 해결되는 잡역부 생활을 계속 할 수 없어 한동안 가정부를 하다가 나중에는 장사를 하게 됐다고 회상한 김할머니 얼굴에는 지난 세월이 뭍어나오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무덤까지 혼자만 간직하고 가려던 악몽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가 발족돼 일본군의 성노예가 됐던 정신대 여성 문제를 사회 잇슈화하기 시작하자 김할머니의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했다고.
“낮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밤에는 잠을 설치며 ‘진실을 밝히자’라고 결심하고는 아침에 다시 ‘그만두자, 이제야 무슨 소용이 있어’하며 포기하기를 여러 번 거듭했습니다.”
이제는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앞에서 하는 수요 시위에도 꼬박 꼬박 참가하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해외 나들이도 서너차례 했다. 부지런하고 정이 많은 김할머니는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올 적의 감동어린 이야기를 갖고 있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너무나 어렵게 살던 필리핀 할머니에게 입던 옷을 벗어주고 꽃샘 추위에 얇은 겉치마만 입고 공항에 나타나 “우리는 잘 사는 거야. 필리핀 할머니에 비하면…”라고 걱정을 했다는 김할머니. 80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 배상 촉구 요구 및 왜곡되지 않은 역사 교육을 위한 교과서 개정, 책임자 추궁을 촉구하며 하루를 1년같이 분주히 뛰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