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한윤숙씨(43) 부부에 지난 8월28일은 악몽의 날이었다.
이날 아침 8시, 출근길의 한씨가 가게근처에 이르렀을 때‘불이났다’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주위에는 소방차들도 눈에 띄었다.
“누구 집에 불이났나?"
그 순간만 해도 이 아침의 소동이 그의 가정의 평화속으로 쳐들어온 고약한 손님임을 미처 몰랐다. 소방관들이 가게안으로 들어가려는 자신을 막을 때야 한씨는 비로소 이 화마(火魔)가 자신들에 미친 불행임을 알았다.
새벽 1시경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는 이웃 두 점포와 함께 8백스퀘어피트 크기의 한씨네 가게를 거의 전소시켰다. 그 많던 상품과 장비는 모두 불에 타고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씨는 충격에 그만 쓰러질 뻔 했다. 얼마 뒤 소식을 들은 남편 이택순씨(44)도 달려왔다.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가게를 바라보며 부부는 지난 10년의 고생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이씨 부부가 노스웨스트 케네디 스트릿에 있는 레인보우 슈퍼마켓을 시작한 건 겨우 3년전. 7년간을 이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다 97년 마침내 가게를 인수하던 날 이씨는 이민온 이래 처음으로 활짝 웃는 부인의 모습을 봤다.
지난 3년간 부부는 한달에도 몇번씩 범죄가 발생하는 위험지역인 이 흑인촌 가게에서 하루 15시간을 매달렸다. 아침 8시 문을 열어 밤 11시까지 일했지만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인성이가 무럭무럭 커가는 걸 보면 고생이 고생인 줄 몰랐다.
“큰 욕심도 없었어요. 열심히 일해 아이 대학 보내놓고 노후에는 여행이라도 다니자고 아내에 약속했는데…."
채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는 이씨는 요 근래 몇 년은 더 늙은 기분이다.
화재로 인한 피해액은 약 6-7만달러. 신통치 않은 보험에 가입해 보상도 많이 안된다.
무엇보다 다시 가게 문을 열려면 적어도 6개월은 기다려야한다는 점이 이씨의 어깨를 짓누른다. 생활비는 차치하더라도 계속내야 하는 가게 렌트비에 아파트비, 모게지비, 아이 교육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이씨의 걱정은 태산같기만 하다.
“재개점할 때까지라도 다른 가게에 파트타임으로 나가볼 생각이지만 솔직히 이제는 의욕이 나지않습니다."
지난 여름밤, 예고없이 닥친화마는 워낙 낙천적인 이씨의 재기 의욕마저도 앗아갔다. 망연자실해 있는 이씨 부부에, 가게 이름처럼 희망의 무지개가 다시 뜰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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