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에너지 그룹 엔론은 잘 나가는 회사였고, 엔론 주식은 증시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우량주였다. 연초 경영실적과 미래 비전을 설명하는 컨퍼런스 콜에서 한 애널리스트가 경영진의 귀에 거슬리는 질문을 던졌다. 그때 최고경영자는 그 질문을 한 사람에게 ‘ass-’하며, 버럭 성을 냈다.
엔론의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경영진이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소액 투자자를 욕하는 모습을 보며, 경영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 매출목표 2,000억 달러의 미국 7위 기업이 무너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9월 중순 엔론 경영진은 내부 갈등을 거쳐 과거 장부를 다시 회계해보니 3,500만 달러가 잘못 계산돼 이익이 줄었고, 계열사인 금융회사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 주주들에게서 12억 달러의 손해를 끼치게 됐다고 발표했다. 주주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렇다고 연간 매출 규모를 보나, 6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회계 잘못이나 손실로 파산까지 갈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그동안 경영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일반회계준칙(GAAP)을 어기고 분식회계를 하는 바람에 수익이 사실보다 부풀려졌고, 주주와 투자자들은 도대체 엔론의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를 의심했다. 한때 엔론 주식을 샀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팔아 제쳤고, 은행들이 빌려준 돈을 돌려 달라고 한꺼번에 몰아쳤다. 엔론은 투자자를 무시하고, 회계장부를 거짓 보고한 죄로 주가는 20센트까지 폭락하고, 40일만에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내고 말았다.
엔론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마치 한국의 대우그룹이 와해될 때를 연상케 한다. 정치권에 많은 자금을 대고, 분식회계를 하며, 무분별하게 사업확장을 한 것 등이 엔론과 대우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한국에서 대우그룹만큼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많이 댄 기업도 없을 것이다. 대우의 김우중 전 회장이 한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의사를 비쳤고, 대우 돈을 받지 않은 정치인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자금엔 후한 기업인이었다. 엔론도 지난해 선거에서 공화당에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낸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텍사스 휴스턴에서 사업을 시작한 케네스 레이 회장은 주지사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기까지 조지 W. 부시의 주요 후견자였고, 연초엔 입각설이 나올 정도로 워싱턴 정가에 영향력이 컸다.
엔론은 주식 발행을 통해 계열사에 출자하고, 계열사가 엔론의 지급보증으로 채권을 발행, 엔론에 되빌려주는 방식을 사용, 돈을 만들어 계열사를 확장하는 방법을 썼다. 그 과정에서 회계준칙을 위반하며 장부외 거래를 동원했다. 대우도 IMF로 나라가 어려울 때 금융계열사를 통해 채권시장에서 돈을 쓸어모아 사업을 확장하면서 회계장부를 분식했다.
최고 경영자가 경영에서 손을 뗀다고 했다가 얼마후 다시 경영일선에 등장하는 것등은 엔론이나 대우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그러나 대우와 엔론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대우가 휘청거리자 한국 정부는 대우 채권을 지급보증하고,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살리려고 했지만, 대우는커녕 한국 경제에 큰 짐을 지우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은 엔론을 시장에 맡겼다. 투자자가 빠져나가고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아 당장 파산위기에 처했는데도 부시 정부는 후견자의 기업을 내버려뒀다. 뉴욕 금융시장은 엔론 파산신청으로 며칠간 동요했지만, 곧 진정됐다.
정부가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개입하는 한국식 대응과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미국식 대응 사이에 어느것이 옳은지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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