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총아 이브 생 로랑(65)이 7일 파리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알제리아 태생인 생 로랑은 17세가 되던 해 당시 패션계의 대부인 크리스찬 디오르에게 발탁돼 스승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18세에 디오르의 조수로 중용된 그는 1957년 스승 겸 후원자가 사망하자 불과 21세의 나이에 ‘미의 본산’으로 통하던 디오르 패션하우스를 물려받았다.
이어 1958년에 가진 첫 번째 개인 발표회에서 생 로랑은 당시로선 금기에 속하던 여성용 양복을 선보여 파리 패션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등 ‘파격적인 미학’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시스루 셔츠를 모델에게 처음 입힌 것도 그였다.
의상을 통해 여성의 미를 돋보이게 만들고 자유의 영역을 넓힌다는 그의 소신은 여성해방운동의 선봉을 자처하던 코코 샤넬과의 자연스런 교분으로 이어졌다. 디오르와 샤넬은 그에게 심미안의 지평을 확대해준 은인들이었다.
이브 생 로랑은 피에르 베르쥬와 손잡고 세계적인 사업가로서의 기반을 잡았으나 정점으로 치닫는 명성에 비례해 마약복용과 동성애, 우울증 등 잡음이 들끓기 시작했다. 잡음과 함께 그의 창조력이 고갈됐다는 질책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는 99년 YSL 브랜드 사용권을 7,000만달러에 구치에 넘겼으나 구치의 디자이너인 탐 포드와 사사건건 충돌을 빚었다.
베르쥬는 생 로랑의 은퇴선언은 창조력에 한계를 느껴서가 아니라 패션업계 전반의 진행 방향에 회의와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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