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호(48·자동차정비공)씨에게 있어 LA의 겨울은 온통 하얀 색이다. "LA에 무슨 눈이 있어?" 하고 물어오는 이들을 대할 때마다 그는 도심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마운틴 하이, 빅베어 등지의 눈을 퍼다 보여주고 싶어진다. 11월 추수 감사절을 전후해서 시작되는 그의 겨울 스포츠 즐기기는 3월말까지 계속되니 꽤 오랜 기간을 눈 속에서 보내는 셈이다. 눈에서 즐기는 레포츠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는 요즘 스노우 보드 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 재미있던 스키도 시들해질 무렵 알게 된 스노우 보드는 운동 신경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에게 있어서도 정복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종목이다. 집 주변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요즘 아이들에게야 누워 식은 죽 먹기겠지만 마흔이 다 돼서 배우기 시작하자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앞으로 넘어져 혀를 깨물어 빨간 피가 하얀 눈 위에 뚝뚝 떨어질 때는 불혹의 나이에 들어선 그이지만 자신의 상처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아이들과 똑같은 심정이 된다. 뒤로 넘어졌을 때는 밤하늘도 아닌 데 쨍 하고 별이 보이더니 그 다음은 필름이 끊겨 들 것에 실려 내려왔던 적도 있다.
힘들게 배운 덕에 지금은 하얀 언덕을 멋지게 가르며 날아 내려오는 짜릿한 쾌감을 만끽하고 있다. 스노우 보드는 초보자일 경우는 한 시간, 잘 타는 사람일지라도 반나절만 타면 온 몸이 나른해질 정도로 운동량이 많은 스포츠. 스키와 마찬가지로 온 몸의 근육을 골고루 사용하는 전신운동이라 중년의 뱃살 제거에도 아주 효과적이다.
그의 스노우 보드 파트너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들 재덕(18)군. 주말에 스노우 보드를 타러 가자고 하면 소풍가기 전날의 초등학교 학생처럼 들떠서 장비와 옷은 물론 아버지의 기호품까지 꼼꼼하게 챙겨 놓는다. 일주일의 일과로 온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이렇게 스노우 보드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주말은 거의가 스키장 행이다. 스키장 가는 길의 차안에서, 그리고 스노우 보드를 타면서 두 부자는 참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일까. 다른 집 또래 자녀들은 부모에게 이유 없는 반항을 해온다는 데 재덕이의 경우 별다른 잡음 없이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연휴에는 눈 좋은 맘모스로 본격적인 겨울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흰 눈 속에 파묻혀 실컷 스노우 보드를 타고 저녁 무렵 빨갛게 타오르는 벽난로를 앞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그 온기가 아니더라도 참 따뜻하다.
<박지윤 객원기자>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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