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에 따르면 클리포드 백스터는 엔론사 최고 경영진의 분주한 일정과 남편 및 아버지로의 개인생활을 균형 있게 하던 인물이었다.
자신만만하고 의지가 강한 백스터는 경쟁이 치열한 휴스턴 엔론 본사의 분위기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 회사의 살벌한 기업환경에서 한편으로는 벗어나고 싶어했다. 연휴 주말이면 그가 ‘고요한 기지’라고 명명한 72피트짜리 요트에서 가족과 함께 모든 것을 잊고 여유를 즐겼다.
최근 몇주일 동안 백스터의 생활은 ‘고요’와는 거리가 멀었다.
엔론의 충격적인 붕괴와 함께 43세의 전 부회장 백스터는 갑자기 소송과 수사의 중심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연방의회는 엔론의 수상쩍은 경영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으라고 요구했다. 분노한 주주들은 민사소송에 그의 이름도 포함시켰다.
회사의 부정을 폭로한 사람은 백스터가 엔론의 비밀거래를 비판했었다고 밝혔다. 백스터의 어깨를 짓누른 중압감은 너무도 컸다.
지난 25일 새벽 백스터는 자신의 벤츠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머리에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경찰은 백스터가 유서를 남겼다고 발표했지만 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의 오랜 친구로 엔론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백스터는 엔론의 파산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의 삶에 미칠 장기적인 여파를 걱정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신중한 타입은 도태되는 엔론에서 고집이 강하고 총명했던 백스터는 스타로 떠올랐다.
공군에서 복무하고 은행에서 잠시 경력을 쌓은 백스터는 1991년 엔론에 입사했다.
규모가 큰 거래들을 성사시키면서 고속 승진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의 재산도 빠른 속도로 증식됐다. 엔론 북미지역 본부장을 거쳐 부회장으로 변신했다. 30대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미 백만장자가 돼 있었다.
하지만 백스터의 출세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모험적인 성향의 엔론 회계담당 전 책임자 앤드루 패스토우와 의견 충돌이 잦았다. 그는 특히 LJM이라는 회사와의 수익성은 높았지만 부당한 거래에 비판적이었다.
지나해 5월 백스터는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가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아내 및 두 아이와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측근은 그가 엔론의 기업 행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고 전한다. 여하튼 백스터는 엔론에서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는 지난 3년간 엔론의 주식 57만7,000주를 팔았다. 3,520만달러어치였다.
그와 절친했던 한 친구는 "백스터가 LJM과의 거래를 맹렬하게 비난했다"는 엔론 부사장 셰론 왓킨스의 사내 서신이 공개되자 맥스터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됐다고 말했다.
그러면 과연 사내 서신의 공개가 성공적이고 중심이 뚜렷했던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것일까.
주위에서는 백스터가 의회에서 동료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야 하는 것과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막지 못한 회사의 몰락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수천명의 엔론 직원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스터와 엔론에 대한 의문은 유서가 공개되면 어느 정도 풀릴 것이다. 하지만 클리포드 백스터의 죽음은 기업 스캔들의 섬뜩한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