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람의 주말나기
▶ 김도화씨 (USC대학 병원의사)
아주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소공녀’의 주인공 세에라는 더 이상 피터팬과 팅커벨을 꿈꾸지 않는 어른이 된 후에도 내 머리속 한 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다. 민틴 선생의 심부름으로 런던 시내에 나왔던 세에라는 진흙 구덩이 속에서 은화 한 닢을 주웠었지.
눈앞의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빵을 사서 먹으려는 순간 굶주림에 지친 거지 소녀를 발견한 그녀는 자기가 다 먹어도 배고플 빵 3개 가운데 2개를 나눠준다. 다른 것들은 다 잊어버렸지만 이런 천사처럼 고운 그녀의 마음은 20년이 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주말이면 노숙자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김도화씨(34·USC 대학병원 의사)를 보며 소공녀 세에라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의사로서 진료실과 수술실을 오가며 쌓인 긴장이 얼마나 클까. 시간만 나면 무엇보다 심신의 피곤을 푸는 데 우선할 것 같은 그녀의 주말 아침은 빵집으로 빵을 받으려 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불우 이웃 돕기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성심당의 임지석씨, 뉴욕제과의 구남권씨는 그녀를 환한 웃음으로 반기며 빵을 한아름 건넨다.
그녀가 노숙자들에게 빵을 나눠주기 시작하게 된 것은 자원봉사로 삶을 더욱 윤택하게 살고 있는 언니 김혜정씨의 영향이 크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PAVA (아시안 태평양 자원봉사 연합회)에서는 작년부터 노숙자들에게 빵을 나눠주자는 새로운 사업을 계획했고 봉사 거리를 찾고 있던 김도화씨는 이 일에 동참하게 된 것.
LA 화훼단지인 다운타운의 월 가와 4가 코너. 벌써 6개월 째 같은 장소에서 맛있는 빵을 나눠준다는 것을 알고 노숙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그리고는 서로 먼저 받으려고 아옹다옹한다. 허기진 노숙자들은 먹을 것을 보면 자제력을 잃고 폭력적으로 변해 덤벼든다. 그들의 공격으로 혼비백산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그녀는 다른 노숙자들을 통솔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자칫 아수라장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해나간다.
빵이 맛있어서인지 1시간 남짓이면 150개의 빵이 모두 동난다. 고무 다라이에 싣고 나간 삶은 옥수수, 날개 돋친 듯 팔려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 돌아오시던 아주머니처럼 빵을 다 나눠주고 난 그녀의 발걸음도 날아갈 듯 가볍다.
빵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는 건 아직 삶에 대한 마지막 희망은 남아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그녀는 고 작은 빵 한 덩이가 노숙자들의 허기진 배와 함께 마음까지 희망으로 채우기를 소망해 본다.
<박지윤 객원기자>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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