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 1백년...땀과 눈물의 대서사시
▶ 멕시코 한인 이민의 발자취
1905년 4월4일, 4년만 일하면 큰돈을 벌어 금의환향할 수 있다는 꿈에 부푼 한인들은 영국 선박을 타고 제물포(인천)항구를 떠났다. 대부분 남자들은 상투머리에 갓을 쓴 바지저고리 차림이었고 여자들도 치마저고리 차림이었다. 그들 1,033명 가운데는 일반 농민과 노동자들 외에 대한제국 시절의 구식군대 퇴역군인 200명을 비롯해 소수의 양반계급과 내시 3명, 무당 등도 섞여 있었다. 특히 대륙식민회사에서 강제로 납치한 걸인, 부랑아들도 300여명 있었다. 부랑아들은 8세, 12세, 13세 정도의 보호자가 없는 어린 소년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륙식민회사가 인원을 채우기 위해 감언이설로 속여 강제로 멕시코 이민선에 태운 소년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제 이민 브로커와 합세해 이민단을 모집한 한인 통역 이준혁과 서무 겸 통역인 권병숙도 포함돼 있었다.
한인들은 제물포를 떠나 멕시코의 최남단 살리나 크루스에 도착한 후 테우안테펙 지협 철로로 멕시코만의 남쪽인 베라크루스주의 코앗사 코알코스를 거쳐 멕시코만을 따라 유카탄의 동북단 항구인 프로그레소(Progreso)에 도착했다. 유카탄의 수도 메리다(Merida)에 도착한 한인들은 인근의 22개 농장으로 분산됐다. 40여일이 넘는 태평양 항해중 배멀미와 영양실조로 3명이 죽어 수장됐고 배에서 1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한인들이 유카탄의 프로그레소 항구에 도착한 것은 5월14일 밤 8시. 당시 프로그레소항에는 한인들을 위한 환영식도 거행되었지만 30분 거리인 메리다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의 운명은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카탄 기후는 3월부터 6월까지는 건기로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가장 무더운 계절이다. 특히 5월은 화씨 11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살인적인 더위로 그야말로 가마솥 안에 들어간 느낌이 드는 혹서이다. 이런 5월에 도착한 한인들은 조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불볕더위로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을 했을 것이다.
며칠 동안 창고 또는 임시 천막에 수용되어 있던 한인들은 농장주들에 의해 노예경매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팔려가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낸 농장주가 우선권을 갖고 있어서 건장한 사람부터 뽑혀갔다. 모두 에네켄 농장으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수십명은 황무지 개간현장과 시멘트 원료의 채광장으로 흩어져 갔다. 그런 분산과정을 통해 가족이 함께 간 경우는 이산가족도 생겨났으며 농장에 끌려간 다음에도 노동력이 부족한 노장년층과 부녀자들을 마음대로 딴 곳으로 팔아 넘기는 농장 사이의 매매교환도 있었다.
이같은 이민 사기극의 희생물이 돼 4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했던 한인들은 계약 만료일인 1909년 5월12일에 풀려났으나 부채노 예제 때문에 한동안 농장에 묶인 경우도 많았다. 농장에서 결혼한 원주민 부인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농장의 소유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노예상태에서 해방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한국 강점으로 이들은 돌아갈 조국이 없었다.
스패니시를 구사할 줄도 몰랐고 농장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현지 사정에 밝은 것도 아니었다. 메리다에서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는 제2의 디아스포라(Diaspora)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면서 혼혈현상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이민 자체가 단발성의 소수이민이었고 4년 동안의 계약노동이었지만 부채 노예라는 특이한 농노이민이었고 당시만 해도 가장 먼 지역으로 떠났으며 국교나 인적 왕래도 없던 낯선 라틴문화권이었기 때문에 현지인과의 결혼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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