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유럽에서 태피스트리는 왕이나 가질 물건이었다. 금과 은을 섞어 정교하게 직조한 벽걸이를 자기 집 벽에 걸려면 당시 돈으로 전함 한 대를 건조할 정도의 돈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싼 물건이지만 태피스트리를 이 성에서 저 성으로 옮기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었다. 그냥 둘둘 말아서 마차에 싣고 가면 됐다. 그러나 이젠 그리 간단치가 않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 토마스 캠블은 유럽 전역에서 값을 따질 수 없이 귀중한 태피스트리 41점을 모아, 12일부터 6월 19일까지 열 ‘르네상스 시기의 태피스트리: 예술과 장엄’ 전시회 준비에 4년을 보내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태피스트리는 대형 원통에 특수 종이를 대고 말아서 하이텍 자재로 감싼 다음에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도록 특수 제작한 상자에 넣어서 수송기로 운송한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중 상자 크기가 30피트에 이르는 몇 개 대작들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서 피프스 애버뉴에서부터 미술관 전시실까지 사람들이 메고 올라왔다.
그러니 태피스트리 전시회는 드물 수 밖에 없어 이번 메트로폴리탄 전시회도 1970년대 이후 처음 열리는 것이고 포장과 운송이 너무 복잡해 단 한번 전시로 끝이다.
당대 최고의 걸작들이 포함한 이 태피스트리들중 대부분은 한번도 대서양을 건너와 본 적이 없는 것들이고 개중에는 지난 수백년동안 단 한번도 햇빛을 보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1561년에 브뤼셀에서 직조된 옥좌닫집이 그렇다. 8개의 태피스트리를 이어 만든 이 캐노피는 1736년에 왕가의 결혼식때 비에나로 옮겨진 이후 최근까지 유럽에서 가장 태피스트리를 많이 소장한 쿤스트역사박물관에 머물렀고 20세기 내내 단 한차례 전시됐다. 이번에는 티시 갤러리의 맨 마지막 방에 모두 걸린다.
이번에 전시될 태피스트리들은 1420년부터 1560년 사이에 짜여진 것들로 르네상스 시기의 명작들이다. 태피스트리는 중세기 직공들이 ‘카툰’이라고 불리던 실물대 총천연색 밑그림을 그대로 천으로 짜 낸, 집약된 노동의 산물로 15x24피트짜리 대형 모직 태피스트리 하나를 짜려면 5명의 직공들이 8개월을 소요했고 거기 금실이나 은실이 들어가면 시간은 2배로 늘어났다.
대개 이탈리아 디자인으로 북유럽에서 직조된 르네상스 태피스트리는 ‘이동식 프레스코’라고도 불린다. 당시 프레스코화에 등장하는 성경이나 신비스런 장면을 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헨리 8세는 특히 이 태피스트리를 좋아해서 무려 2000개 이상을 구입해 다 이어 놓으면 5킬로미터가 넘을 정도였다. 그는 물론 장식해야할 성을 14채나 갖고 있었다.
그 크기나 왕가의 의식에 사용되는 쓰임새로 견주어볼 때 태피스트리는 그 주인들의 권력과 영화를 광고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지만 워낙 값이 비싸다보니 아주 귀중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 가격은 당시 그려졌던 수많은 그림들보다 훨씬 비싸, 레오 10세 교황이 1515년에 라파엘에게 시스틴 성당을 장식한 10장으로 이루어진 태피스트리 세트의 밑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했을 때 지불한 돈은 미켈란젤로가 같은 성당 천장에 그림을 그리고 받은 돈의 5배에 해당했다. 영국의 헨리 8세가 ‘다윗 이야기’에 지불한 돈도 당시 전함 한 척 값에 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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