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인지 이 주일에 한번인지 집에 들려주시는 정원사아저씨들 덕분에 특히 뒤뜰은 몇 년 전보다 많이 정리된 셈이다.
오랜만에 커튼을 양쪽으로 밀어놓고 창문을 몽땅 열었다. 바람이 참으로 시원했다.
한때는 그토록 정성을 쏟았던 정원이었다. 흙을 손으로 만지고 싶었고 흙 냄새도 좋다고 굳이 맨손으로 꽃과 나무를 가꾸고 농사를 지었던 정원이었다. 계절마다 색색빛깔의 꽃들을 심은 적이 있었고, 여러 종류의 채소도 심은 적이 있다. 그 꽃들을 집안 곳곳이 에서 볼 수 있었고, 그 채소로 식탁을 꾸몄다. 지금은 장성하여 대학원과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이유식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겨우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가꿔주는 편이다.
뒤뜰을 바라보면 마치 썰렁한 이른 가을의 아침 같다. 나뭇잎과 나무줄기, 흙과 시멘트의 색상이외는 아무런 색깔이 없기 때문이다.
열려진 창문사이로 나비처럼 훨훨 날라 들어오는 바람이 그리 시원하고 따스할 수가 없었다. 오늘 오후에 잠시 어머니에게 들렸는데 어머니는 뒤뜰에서 쭈그리고 앉아 마늘을 절구통에 부어 빻고 계셨다. 나는 아이고 냄새 야 했고 어머니는 이렇게 앉아있으니까 따뜻해서 좋다 하셨는데 봄 햇살이 따스하다는 말을 알 수 있었다.
봄이라서 인지 좀 멀리 시각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으로 눈이 좁은 여자이다.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거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유난히 따스한 봄이 좋았고 초록빛 띠는 뒤뜰의 잔디가 내 눈에 좋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이닝룸에서 뒤뜰을 바라보았는데 순간 저 멀리 분홍빛이 빤짝거렸던 것이다.
반짝거린 분홍빛은 장미였다.
노랑장미, 빨간장미, 흑장미, 백장미를 그 얼마나 심고 또 심었는지 모른다. 또 다 죽었는지 모른다. 몇 년마다 새로 심어주지만 심는 데로 죽어 가는 듯 했다. 단지 분홍장미만이 생명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집안의 화초가 날이 갈수록 작아진다는 말이 있듯이 해가 갈수록 나의 장미나무의 키도 작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단 세 송이의 분홍장미였다.
발바닥이 아팠다. 이를 악물고 뛰었다. 행여 겨울동안 잠을 자고있던 유리조각이 잠에서 깨어나 나의 발을 찌를까 겁이 났다. 베블페디오 바닥을 지나 마른 듯한 잔디를 밟고 빨간 스텝스톤 여러 개를 지나 장미꽃 가까이 갔다. 가위가 눈에 띠지 않아 대신 기다란 식칼을 오른손에 쥐었다.
봄날의 장미의 줄기는 연해 보였지만 잔잔하고 매콤한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어찌 맨손으로 줄기를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다. 칼로 후려치듯 내려치니 예쁜 분홍빛 장미 한 송이가 뚝 땅으로 떨어졌다. 작은 두 손뻠 길이의 줄기를 가지고 뚝 땅으로 떨어졌다. 나의 맨발이 보였다.
기다란 꽃병에 분홍장미를 넣어 물을 먹였다.
식탁 위에 놓아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분홍색이 매우 예뻐 보였다. 향기도 좋았다. 언젠가 여러 색깔의 장미꽃 한 뭉치를 사 본적이 있는데 장미 빛 색상에 따라 향기도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 기억이 있다. 다시 한번 분홍장미의 향기를 기억해 보았다.
지긋이 눈을 감고 깊이 들어 마신 분홍빛 장미의 향기를 집안에 불어 놓으니 집안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어 버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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