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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10년전인 90년대 초로 돌아가보자. 미국 굴지의 은행들이 한국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금리를 싸게 해줄테니 돈을 빌려가라고 대대적인 세일을 했다. 비즈니스 위크지는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용트림하고 있다"느니, "한국이 몰려온다"느니 하면서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두려운 시각으로 다뤘다.
한국 사람들은 그런 칭찬에 도취했고, 기업들은 미국 은행들로부터 달러 자금을 흥청망청 들여와 유화공장을 짓고, 제철소를 건설했다.
요즘 또다시 뉴욕 금융가 사람들이 한국 경제를 대단히 칭찬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경제가 지난 4년동안 과감한 구조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이겨내고 강력한 힘으로 회복하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국 언론들도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월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좋게 얘기하고, 미국 언론들이 한국을 잘 써주고 있을 때 함정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미국 투자가들이 한국에 들어갈때는 한국을 좋게 말하고, 빠져나올때는 한국을 거의 야만적인 수준으로 몰아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이 여러 가지 점에서 미국 자금이 아시아로 몰려가던 90년대초와 비슷하다. 90년대초 미국의 단기금리가 10%에서 3%로 떨어져 저금리의 시대가 열렸고, 미국 경제가 침체를 극복하고 장기호황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었다. 지금도 미국의 은행간 콜금리가 40년만에 최저인 1%대로 떨어졌고, 올 하반기에 금리가 올라가더라도 연말까지 3%대의 저금리가 유지될 전망이다. 지금의 미국 경제는 10년전처럼 놀라운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10년을 사이에 두고 나타나고 있는 또 다른 비슷한 현상은 바로 월가의 거대한 뭉칫돈이 아시아로 몰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년전 400대로 떨어졌던 한국 증시의 종합주가지수가 지금 900선을 돌파하기 직전까지 오른 것을 그 증거로 들 수 있다.
그러면 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로 몰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경제가 구조개혁이 이뤄졌기 때문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들이 90년대초 아시아에 몰려올 때 아시아 국가들이 회계가 투명하고 기업 지배구조가 훌륭했기 때문은 아니다. 아시아 시장에서 많은 이문을 남길 것이라는 동물적 직관 때문이었다.
지금 미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뉴욕 자본시장 주변의 엄청난 대기성 자금이 투자할 곳을 찾고 있다. 남미를 가려니 아르헨티나처럼 돈을 떼일 우려가 있고,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는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같은 회교세력이 있는 곳은 싫고, 한국과 대만이 그들에겐 좋은 투자처로 분류되고 있다.
미국의 펀드 매니저들은 평균적으로 지난 2년동안 주가 하락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어떤 매니저는 보너스 한푼도 받지 못하고 터졌다. 올해는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블루칩 500개(S&P 500)의 주가수익률(PER)이 1929년 대공황 직전보다 높으니, 뉴욕증시에서 높은 수익을 내기는 어렵고, 한국과 같이 변덕이 심한 시장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제금융시장이 뉴욕 월가를 중심으로 하나의 시장으로 되면서 주변부 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14조 달러의 엄청난 국제 유동성이 월가의 심장이 뛰는대로 흘러나갔다가 빠져나오면서 이른바 이머징 마켓은 과열과 붕괴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90년대초 멕시코는 저금리의 미국 자본이 고수익을 찾아 몰려갔다가 어느날 갑자기 빠져나오면서 경제 파탄의 나락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주가가 뛰니 마냥 좋아들하고 있는데, 미국인 정확하게 말하면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이 한국 주식 사기를 중단했을 때 시장을 버텨나갈 힘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또 그들이 놀란 양떼처럼 한꺼번에 빠져나가지 않도록 경제를 잘 관리하고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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