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웅목사, ‘함석헌 이야기’ 후일 정리 계획
“함석헌 선생님이 평소에는 개인 신상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 편입니다. 48세때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부인이 자신은 여성이 아니라며 잠자리를 거부하자 10년정도 견디다가 외롭다고 느끼셨나 봅니다. ”
블루밍턴 노말 한인교회의 서정웅 목사(사진)는 함석헌선생과 20여년 이상 친분을 유지, 함선생의 노년기 사랑이야기까지 알고 있어 언젠가 함선생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발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서목사는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중퇴하고 고향인 강원도 대진 인근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함석헌 선생을 만났다. 당시 서목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야학에 가려면 이화대학교 횃불팀이 설립한 선혜학원을 지나야 했다. 선혜학원에는 당시 함선생을 따르는 여학생들이 서너명있었고 함선생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로 혼란스러울 때 저항하는 재야인사로의 외로움을 선혜학원의 한 여학생과 주로 의논했다.
후일 여제자는 미국에 유학, 10년간 함선생과 떨어져있게 됐고 그 동안 함선생과 여제자는 서신 왕래를 통해 사랑을 나눴다. 시국이 혼란스러워 보관여부를 자신하지 못한 여제자는 2백여통에 이르는 편지를 서목사에게 맡겨 보관해 줄 것을 당부했다.
“1974년 편지 뭉치를 받았습니다. 함선생의 애정, 질투 등 인간적인 면들을 볼 수 있는 글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집마당에 땅을 파고 묻었는데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몇 달후 파서 화개산에 묻었지요.”
서목사는 항아리속의 자료가 부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 편지를 넣고 석유를 가득채운 후 자동차 수리에 쓰이는 젤리 성분 접합제로 밀봉했다.
“당시에는 사료를 잘 보관해야하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5년전쯤엔가 한국에 갔을 때 화개산에 올라가 장소를 확인했었는데 벌써 3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어디다 묻었는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후에도 여제자와 함선생은 사랑의 편지를 주고 받았고 이후 편지들은 여제자가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함선생과 젊은 여제자의 사랑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60을 넘어선 여제자는 아직 때가 아닌 듯하다고 이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미루고 있지만 보관하고 있는 편지 등을 활용,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함선생이 생전에 있을 때 20여년 이상 가르침을 받았다는 그는 후일 당시 따라다니면서 받아적은 메모를 정리, 함선생의 꿈과 철학을 세상에 알릴 계획이라고 했다.
이정화기자 ch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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