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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한국에 노무현 바람이 뜨겁다. 호남과 영남의 지역 갈등의 골이 뚜렷한 한국 정치 구조에서 영남 출신이 호남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은 것이 바람의 시초인 것 같다.
영남 사람들도 “광주 사람들이 마음을 여는데, 우리가 남이가”하면서 노무현 바람에 가세했다는 얘기다. 기성 정치인들 가운데 믿을 사람이 없는데, 어쩐지 신선하질 않느냐는 사람도 있다.
가난한 서민 출신으로 조금은 촌스럽지만 솔직 담백한 어투로 정면돌파하는 모습도 국민 정서를 파고든다고 한다. 선거가 아직 반년 이상 남아있어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최근의 여론 조사에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야당의 이회창 후보와 대결할 경우 더블스코어로 앞서 달리고 있다. 노무현 돌풍은 단순한 특정인의 인기를 넘어 그동안 감춰져 있던 한국인들의 깊은 정서가 폭발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노무현 바람은 앞으로 넘어야 할 언덕이 많다. 가깝게는 이달말까지 진행되는 민주당내 경선이 남아있다. 다음은 국회 다수당이자 제일야당의 후보를 뛰어 넘어야 하고, 또 아들의 비리 문제로 고민하는 김대중 대통령도 어느 시점에선가는 넘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는 국내 이슈다. 어쩌면 10년 이상 정치활동을 한 정치인에게는 시계가 뚜렷한 언덕이고 과제일수도 있다.
문제는 해외 이슈다. 미국과 국제 자본시장이 한국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를 눈여겨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나라가 한국인데다 테러 이후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국제 전략면에서 한국의 차기 정권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딕 체니 부통령, 폴 월포비츠 국방부 차관 등 부시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그를 만난 것도 한국의 차기정부에 대한 관심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그 직후 부시 행정부의 대 한반도 발언은 ‘악의 축’이었다.
이달초 워싱턴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미국의 한국 전문가들이 ‘노무현이 누구냐’고 궁금해 했다고 한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담당자들도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진보적인 사람이 등장하더라도 다음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노무현 후보의 대미 노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전언이다.
벌써부터 한국에선 내로라는 국제 전문가들이 노무현 후보 주변에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후보가 김대중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지만, 차기 대권주자가 어떤 국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대미관계와 대북관계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은 분명하다.
또 국제금융시장의 심장부 뉴욕 월가에서도 연말 대선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요즘 뉴욕의 금융인들을 만나보면 누가 권력을 잡느냐는 것보다 현 정부의 경제 개혁과 개방을 이어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시각에서 보면 노무현 후보는 어쩌면 야당이 공격하는 것처럼 평등주의자 또는 페론주의자로 보인다.
여기서 지난 99년 20년만에 사회당 정부를 세운 칠레의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이 대선 직전에 뉴욕 월가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고, 칠레에 투자한 많은 미국 자본가들이 사회당이 정권을 잡으면 시장 경제를 거꾸로 되돌리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라고스는 뉴욕을 방문해서 데이비드 록펠로, 조지 소로스, 스티브 포브스 등 내로라는 큰 손을 만나 시장 경제를 유지하겠다고 다짐했다. 라고스가 당선된 후에도 미국 자본이 칠레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국도 증권시장의 40%가 외국 자본이고, 엄청난 해외 자금이 유입돼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는 대선을 앞두고 해외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터져나온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를 불안하게 보는 국제금융시장의 시각을 바로잡아주는 것도 노무현 바람이 넘어야 할 높은 언덕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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