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중동사태, 신부들의 성추문 등 무거운 핫 이슈들이 넘치는 현실과 애써 거리를 두려는 듯 올해 졸업식에서는 대학도 ‘가벼운’ 연사들을 선호하고 연사들도 ‘가벼운’ 화제를 꺼내드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 같은 추세의 대표 사례는 코미디언 빌 코스비. 코스비는 뉴저지주 드루 대학, 텍사스주 휴스턴의 라이스 대학, 매서추세츠주 스프링필드대학, 펜실베니아주 해버포드대학,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대학 존스타운 분교 등에 모습을 드러냈다.
워싱턴 DC 아메리칸 대학에서는 배우 골디 혼이 연단을 차지했고, 오는 7월 있을 칼텍 졸업식에 가면 배우 앨런 알다의 연설 모습을 볼 수 있다.
알다는 칼텍이 자랑하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페인먼의 일생을 그린 연극 ‘QED’에서 페인먼 역을 맡았기 때문에 칼텍의 경우는 좀 다르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UC버클리 졸업식 연사로 나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니 모슬리는 코스비의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대학 중퇴자인 스키선수 모슬리는 UC버클리 졸업생들을 앞에 두고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기 나름의 정의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훈수를 뒀는데, “성공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행복의 소유를 보장한다”는 모슬리 나름의 행복론이었다.
기념 연사들이 무거운 화제를 피하는 경향은 지난 10일 있었던 USC 졸업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월남전 종군기자 출신으로 퓰리처상까지 받은 유명 언론인 데이빗 홀버스탬은 기조연설에서 뉴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않는 대신 “사회에 나가면 가슴의 소리를 들으라”고 역설했다.
어쩌면 연사들은 지난해 12월 칼스테이트 새크라멘토의 동계 졸업식을 유심히 지켜봤는지 모른다. 당시 연사로 나섰던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발행인 재니스 히피는 “미국의 테러 전쟁이 기본적인 미국적 자유를 희생시킬 위험이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가 거센 야유를 받고 결국 기념사를 마치지 못하고 연단을 떠났다.
이 때문인지 어쩐지 이 대학은 합동졸업식 대신 7대 단과대 별로 졸업식을 갖던 옛날의 전통으로 되돌아갔고 학생수가 가장 많은 문리대는 외부 기념연사 없이 졸업식을 끝냈다.
사실 연사들이 복잡한 세속적 현안을 떠나 무언가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화제를 택해 졸업식장의 축제 분위기를 띄우려는 것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나 올해에는 이 같은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는 지적이다.
한 가지 굳이 예외가 있다면 9·11테러인데 그나마 연설에 등장될 때면 비극적 측면은 부각되지 않고 공공봉사·인내·미국의 정신 같은 덕목들이 중점적으로 언급된다. <한우성 기자>
wsha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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