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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
하루종일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4일 한국과 폴란드의 월드컵 경기는 48년만에 기다려온 승리를 안겨줬다. 황명보와 유상철이 골을 터트릴때마다 목이 쉬는줄도 모르고 소리를 질렀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리스 출신이라는 사람도 경기를 보았다며, 한국 선수들이 대단히 빠르고 훌륭했다고 축하해주었다.
미국에서 경기를 본 사람이 이러한데, 한국에서 더 흥분한 것은 당연하다. 서울 광화문 거리는 수만명이 전광판 앞에 모여 황선홍의 선제골이 터지자 환호의 도가니에 빠졌고, 부산역 광장과 해운대 해수욕장도 축제의 분위기였다고 한다.
뉴욕에서도 플러싱 서울플라자에는 새벽부터 1,000여명의 한인들이 모여 응원했고, 맨하탄의 한 카페에도 200여명의 붉은 악마들이 등장했다. 정말 이날은 한국의 날인 것 같았다.
대중의 광적 흥분을 경계해야 한다고 믿는 기자이지만, 이날 하루만은 스스로 광적인 흥분을 억제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사람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다른 한국 사람들이 모두 동지로 보였다.
월드컵은 올림픽과 함께 세계적인 경기대회다. 올림픽은 강대국 순으로 금메달을 많이 따고, 육상이나 수영처럼 개인기가 중시된다. 그래서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가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러나 월드컵은 강대국의 순서가 아니다. 유럽과 남미가 주도권 싸움을 벌이기는 하나, 가난한 아프리카도 끼어들어 삼각축을 형성하고 있고, 이번 한국-일본 대회를 계기로 아시아도 다크호스로 등장하고 있다. 넓은 벌판만 있으면 경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영장이나 빙상시설을 건설할 비용이 없는 나라에서도 훌륭한 스타가 탄생한다.
월드컵은 11명의 단체 경기이기 때문에 팀워크가 강조되고, 국민적 흥분을 자아낸다. 지난 98년 월드컵 대회에서 주최국인 프랑스가 우승하자, 파리 샹델리제 거리에는 2차대전 승리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몰려들어 환호했다. 지난해 예선전에서 중국이 중동의 소국 오만과의 경기에서 승리하자 북경 천안문 광장에는 50만명의 인파가 운집, 축제의 밤을 보냈다.
정치인들에게도 국민적 열광을 자아내는 축구 경기가 좋은 정치 활동의 공간이 된다. 세네갈의 대통령은 선수들이 출전하기 앞서 멋진 파티를 열어줬고, 김대중 대통령도 폴란드와의 경기에 참석, 골을 넣을때마다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태극기를 흔들었다.
월드컵은 스타를 탄생시킨다. 프랑스의 지단은 몸값이 6,400만 달러로 미국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고,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가 마약복용 혐의로 출전이 금지되자, 인도 동쪽 벵골 사람들이 항의시위를 했다.
영국 임페리얼 대학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축구는 연간 2,00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고, 월드컵 경기 하나가 수백억 달러의 대목 장사거리다.
월드컵 본선에 참여한 국가의 국민들은 매 경기마다 흥분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번 폴란드 전에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기리라고 믿었고, 선수들이 국민의 열망을 따라 주었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만일 경기에 졌을 경우를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지적처럼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들보다 감성적이고, 그래서 열광적이다.
또 한국 사람들은 패배의 미학을 배우지 못했다. 김병현이 뉴욕 양키스에 졌을 때 땅바닥에 철썩 주저않은 모습이나, 김동성이 판정패를 당했을 때 태극기를 내던져버린 것은 한국인들이 당당하게 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년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을 지내다 지난해 은퇴한 잭 웰치는 최근 자서전에서 학창시절에 경기에 졌을 때 어머니가 ‘당당하게 지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이길 수도 없다’고 혼을 내던 기억을 되살려 경영을 했다고 회고했다.
한국팀은 16강 진출에 앞서 미국과 포르투갈과 경기를 해야 한다. 한국팀이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언젠간 좌절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선수들이 열심히 뛰도록 목청껏 응원하자. 그리고 선수들이 힘에 부쳐 지더라도 당당하게 그들을 응원하고 밀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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