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이 허락하는 한 붓질을 쉬지 않을 겁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왠지 기분도 울적해지고 마음까지 허전하거든요"
강산이 6번 바뀌고도 남은 60여년 동안 꾸준히 작품활동을 벌여온 미술계의 원로 임규삼 화백은 85세가 된 지금도 하루 일과를 반드시 스튜디오에서 시작한다.
29년 넘게 교직생활을 해온 반듯한 규칙성이 몸에 밴 것도 한 이유겠지만 오전 8시30분부터 정오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붓을 잡고 새로운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서이다.
임화백은 최근 4년간 그렇게 만든 작품 30여점을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사비나 리 갤러리에서 전시한다. 언제나처럼 자애로운 모자상과 산새, 석류 등 자연과 맞닿은 온유함으로 풍성하다.
화사한 진초록의 색감도 여전하지만 일부 작품에는 차갑고 깊은 색들도 드문드문 쓰였다.
초창기 반추상이던 경향은 점차 사실적으로 변모돼 왔다. 임 화백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자유롭게 펼쳐지면서 정돈된 짜임새가 흐르는 구성력이다. 작가만의 개성을 한눈에 드러내는 동시에 보는 이를 배려하는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다가와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기술이 아닌 마음으로 빚어진 작품들이 소중합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1938년 도쿄 일본미술대학 유화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작품생활을 시작, 일본내 미술전에서 두 차례 입선하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일제치하가 끝나고 만들어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는 첫 회부터 참가해 30년 연속으로 출품했고 58년부터 3년 연속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 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을 거치며 국전의 터주대감으로 명성을 날렸다. 보통 국전을 거치며 미대 교수가 되는 게 당연시되던 풍토와는 달리 임 화백은 용산중고, 수도여고, 경기여고 등지에서 30년 가까이 ‘미술선생님’으로 고집스레 남았다.
"이름을 세우려면 대학에 갔겠지만 저는 아이들 옆에서 정성껏 그림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중고교 시절이 미술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라는 그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 옛날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그림을 배우던 김소문씨도 현재 남가주에서 활동하는 사랑스런 제자중 한 사람. 어느덧 70세 가깝게 늙어버린 제자들도 있다.
화단의 어른인 임 화백은 후배들에게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그의 말처럼 "세상도 바뀌었고 모두 화가인데 괜한 잔소리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꼭 기억하기를 당부한다. "말만 앞세우지 말고 열심히 작품으로 보여주는 작가"가 되어 달라고.
전시회 리셉션은 21일 오후 6시부터. 주소 3921 Wilshire Blvd. 문의 (213)380-8789
<이재진 기자> jjrhee@koreat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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