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휴전 49주년이 가까웠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소련의 사주를 받아 기습 남침한 북한 인민군은 파죽지세로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다.
존망의 위기에 놓인 한국은 UN에 SOS를 보내 미군을 주축으로 한 16개국의 UN군이 급파되어 열세한 한국군을 도와 반격, 1950년 10월 19일 북한의 심장부 평양을 점령하고 통일의 기회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이때 중공의 안전과 동일한 공산체제인 북한을 돕는다는 명문을 내세워,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원(관) 팽덕회가 8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인해전술로 남진, 통일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회를 망쳐놨다. 밀고 밀리던 전선은 마침 소강상태가 되어 1951년 6월 24일 소련의 UN 대표 말리크가 휴전회담을 제의 했다.
이에 대해서 우리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회담을 완강히 반대하며 북진통일을 주창하였지만 그로부터 2년이 걸려 전쟁의 피해 당사국인 한국이 배제된 채 미국의 해리슨 소장과 북한의 남일 중장이 양측 실무 대표가 되어 정전협정을 조인 했다.
중공이 감행한 인해전술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사람으로 바다를 만들어 적을 익사시킨다는 전술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비인간적 행위이다.
이를 지휘했던 팽덕회는 정전협정에 중공대표로서 서명하였으며 이후 20여 년이 지나 중공의 부수상겸 국방상으로 승진했다. 국방상이 된 그는 “앞으로 핵전쟁에 중국인구(당시 8억)가 6억이 죽어도 2억이 남으니 중국은 핵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다”라며 자랑스럽게 떠든 바 있다.
중국 전한시대 유명한 사학가 사마천(BC 145~86)의 사기에 성군으로 꼽히는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 나온다. 문왕은 백성의 피를 흘리지 않으려고 전쟁을 피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이민했다. 이 사례는 후에 공자사상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리고 무왕은 사람 죽이기를 싫어하는 어진 사람만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며 이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이것은 후에 맹자 사상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같이 고대로부터 훌륭한 조상들의 인본주의 사상을 이어 받은 중국에서 인간의 생명을 초개로 여기는 팽덕회와 같은 괴짜가 배출되었는지 모르겠다.
최근 중국관원들이 한국 외교관들을 마구 폭행하고 가련한 탈북자들을 무참하게 짓밟고 짐승처럼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동족으로서 단장의 비애를 느낀다. 중국은 하루 빨리 시대착오적인 중화사상을 버리고 문명국의 면모를 갖추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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