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가 영주권자를 포함한 비 시민권자들에게 주소이전 신고를 의무화한 것은 미국답지 않은 어설픈 조치다. 이민법 265(a)항에 따라 14세 이상, 30일 이상 미국에 체류하는 영주권자, 유학생, 단기취업자가 주소를 변경했을 때 10일 이내에 이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해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를 편가르고 있다.
테러사건 이후 국가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지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기본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함이라면 시민권자든 비시민권자든 모두에게 똑같이 주소이전 신고를 의무화할 것이지 유독 비시민권자에게만 이같은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엄연한 차별행위다.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비시민권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나 범법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인가.
정부는 신고절차가 매우 간단하므로 요란 떨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굳이 비시민권자에게만 적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비시민권자 대다수는 시민권자와 마찬가지로 합법적으로 이곳에 거주하는 성실한 납세자임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또 신고를 하지 않으면 벌금, 최고 30일 이상 구류형, 사안에 따라 영주권 박탈과 추방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신고만 하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누구든 실수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신고를 잊어버리거나 제 때 못할 수가 있는 것이다.
법대로라면 영주권자 등 합법체류자들이 작은 실수를 했다고 해서 추방될 수 있다는 뜻인가. 아무리 테러와의 전쟁 국면이라지만 50여년간 사문화됐던 법규를 다시 들고 나와 법대로 사는 수많은 비시민권자들을 ‘요주의 인물’ 보듯 하는 것은 진정한 법치라고 할 수 없다.
최근 5년간 법원은 연방이민국이 문제를 일으킨 비시민권자에게 추방 출두명령을 통보했다 해도 우편배달이 되지 않아 법 집행을 못할 경우 그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주소이전 신고의무를 주민들에게 지움으로써 법원의 판결을 비켜 가려는 것도 이번 조치의 동기 중 하나라고 하니 지나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시민권을 갖고 있든 갖고 있지 않든 법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법 앞에 평등할 권리가 있다.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를 갈라놓는 듯한 이번 조치는 그래서 잘못된 것이다. 소수계 커뮤니티가 단결해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바로 잡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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