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세상사는 이야기)
▶ 새라 최 <피아니스트>
영화를 좋아한다고 쉽게 말하면서도 자주 보지는 못하는 게 나의 현실. 최근에 본 영화로는 한 달도 더 전에 웨스트 엘에이 쪽 산타모니카 길 선상에 있는 오래된 극장에서 본 “시네마 천국”이 있다.
1988년 여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처음 보고, 1989년 여름 아스펜에서, 그리고 1990년 가을 조지타운에서 세 번을 봤지만, DVD 플레이어를 마련하고 제일 먼저 산 DVD 도 “시네마 천국”이었다. 우연히 이 “시네마 천국”의 무삭제판이 다시 극장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을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접하고, 교회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엘에이 타임즈를 사서 ‘Calendar’ 섹션을 샅샅이 뒤졌다. 극장 주소랑 전화 번호랑 시간표를 적고, 그 길로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은 첫사랑 이야기이다. 영화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첫사랑을 회상하며 살짝 그려놓은 수채화 같은 영화 속으로 내가 초청 받는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하는 영화. 주인공 남자가 처음 갖게 된 소형 영사기로 한 눈에 반한 여인을 찍은 모습이, 여인의 본래 모습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나오는 걸 신비한 감동으로 받아들였던 영화였다. 그랬는데, 자그마치 한시간 가까이 더 길어진 이번 영화에서 그 주인공과 첫사랑 여성이 헤어지게 된 사연이 밝혀진다니 안 가볼 수 없었다.
돌담위에 항아리 같은 단지가 놓여져 있는 장면위로 에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흐르는 오프닝부터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왔다. 마치 오랜만에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 기분이랄까. 그렇게 꼼짝 않고 앉아서 세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를 다 봤다.
솔직히 주인공과 첫사랑의 숨겨진 뒷이야기는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너무 통속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행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왜 유독 이 영화가 그렇게도 내게 특별한 감동을 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영화를 만든 사람의 영화에 대한 사랑이 물씬 느껴지는 것도 그렇고, 거의 최고라 여겨지는 영화음악도 그렇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다 좋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는 ‘첫사랑’의 경험에 대한 기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계속 나의 첫 사랑에 대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걸 막을 길이 없었다. 가슴 두근거리던 만남들, 아무 말 없이 들고만 있어도 상대의 숨결을 또렷이 느낄 수 있던 전화기, 같이 웃고 같이 공유했던 모든 시간들. 좋은 기억들만 떠오르게 하는 것도 아마 영화 “시네마 천국”이 가진 마술의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가슴 한켠이 칼로 저미듯이 아파오는 건, 첫사랑이 끝나게 되어서가 아니라, 첫사랑의 상대가 나에게 내뱉었던 모진 말 때문이 아니라, 그 때의 눈부시던 나의 모습이 정말 눈물겹게 그립기 때문이었다.
단호히 내 마음의 모든 평화와 생활의 조화를 내던지고 사랑을 선택했던 그 때의 용기는 어디 가고,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밸런스”’라는 말을 되뇌는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도 왜소하고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내가 이루고 있는 ‘밸런스’를 과감히 깨부수고 사랑에 집중하기엔, 버려야 할 것과 잃게 되는 것들이 먼저 눈앞에 아른거려서 여간해서는 힘든 나이가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시절 눈부시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 나지막한 한숨으로 이어지는 걸 어쩔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다.
첫사랑의 기억을 돌이켜보며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잃게 해주는 이 영화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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