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식량난은 1980년대부터 그 심각성이 드러나 1990년도에 이미 ‘인육사건’이 발생했다고 전 북한 농업과학원 연구원 출신 탈북자 이민복(46)씨가 18일 증언했다.
’탈북난민보호 뉴욕협의회’(회장 손영구 목사) 초청으로 3주간 미국을 순회하며 북한실정과 탈북자 문제를 알리는 이씨는 이날 오전 11시 플러싱 서울플라자 영빈관에서 실시한 첫 강연에서 자신의 탈북 동기를 설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씨는 "나는 ‘쌀은 곧 공산주의다’라는 김일성 교시 한마디에 전자공학이라는 중학 때의 꿈을 접고 농업연구에 전념, 이 분야에서 제일의 권위자가 될 정도의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연구결과 북의 식량난은 식량생산의 3대 조건인 종자, 경지면적, 기상기후 등이 아닌 농업정책에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지적한 것이 반동분자로 받아들여져 결국 탈출을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어 "북한의 식량난은 1994년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 이후부터가 아니라 1980년대부터 배급이 늦어지고, 옥수수와 입쌀 비율이 바뀌고, 90년대 들어 3, 4, 5, 9개월치가 건너뛰고 하더니 김일성이 사망한 후 94년부터는 아예 중단됐다"며 "내가 소속해 있던 연구소 바로 곁인 평남도 숙천군에서 한 소년을 ‘불고기감’으로 먹은 청년 3명이 체포된 뒤 한결같이 ‘고기가 먹고 싶어서’라고 실토했을 정도로 식량 문제는 심각했다"고 덧붙였다.
’탈북난민보호 뉴욕협의회’의 몽골쉘터건립추진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이날 설명회에서 이씨는 또 탈북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상세히 알리며 뉴욕한인들의 북한동포들과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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