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줄타기같았던 목회를 마치고 나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홀가분하기도 하고요.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골인 지점에 들어선 운동선수같은 기분입니다.”
위에서의 부름에 순종해 앞만 보며 달려온 워싱턴 지역 교계의 원로 손인화(69) 목사가 46년 목회를 마감하고 지난달 22일 은퇴했다. 1956년 목사 안수를 받던해 육군 군종학교를 수료하고 바로 중위로 임관, ‘푸른 옷과 함께 실려간’ 손목사의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병사로 부름 받은 삶, 바로 그것이다.
1965년 맹호 부대와 함께 월남으로 파견돼 제 1연대 군목을 지내고 육군 본부 군종감실 선교담당관, 수도경비 사령부 군종참모, 육군대학 군종 부장 및 동대학 교수, 육군 본부 군종 과장 등 1980년 정년 퇴역하기까지 손목사의 전반기 목회는 나라의 간성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이었다.
부하장병들의 목숨을 구하려다 장렬히 전사한 강재구 소령의 일화는 손목사의 예화에서 빠지지 않는다.
“사고는 파월장병들의 수류탄 투척 훈련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그부대의 군목으로 있었지요. 부하들을 구하려다 장렬히 전사한 강소령(당시 대위)의 몸은 조각 조각 떨어져 나가 수습이 어려웠습니다. 널판을 부쳐 다리를 만들고 군복을 입혀 장례를 치렀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 안기부장을 지낸 장세동씨도 월남 파병 동기로, 세례를 주고 집사로 세웠다.
“군목시절 항상 호주머니에 사탕을 넣고 다니며 전방에서 보초를 서며 고생하는 장병들의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눈물젖은 경례를 많이 받았습니다.” 휴가를 받은 장병들이 집에 가지 않고 손목사의 집에 몰려드는 경우가 많아 가난한 살림에 음식을 해대느라 고생하기도 했다. 수제비를 끓이다가 장병들 숫자가 많아지면 반죽을 더 떼어 넣기 일쑤였다.
이민 목회는 1985년부터 시작됐다. 버지니아장로교회로 바로 부임해 이곳에서 퇴임하게 됐으니 다행스럽다. 목회 생활중 가장 기쁜 기억이라면 역시 교회당 건축이다.
“버지니아 장로교회는 교회 채권을 발행해 예배당을 지은 최초의 미주 한인교회일 겁니다. 젊은 사람들도 모두 채권을 샀습니다. 1주일만에 50만달러가 모였고 공사가 무사히 진행됐습니다. 건물을 지으며 성도들이 돈을 벌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제는 마음껏 선교여행하며 쉬고 싶다는 손목사는 그러나 오는 10월 26일 한국 국방부가 실시하는 6,000명 장병 세례식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휴가를 떠나기는 어려울 것같다.
한편 버지니아장로교회 창립 23주년을 기념하고 손목사의 원로목사 추대를 겸해 열린 은퇴식에서는 손상웅 목사가 담임 목사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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