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오후의 햇살이 엷게 비칠 때의 바람결이 여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요즈음이다. 출퇴근길에 언뜻언뜻 보게되는 들꽃도, 억새풀의 너울거림도 가을의 정취와 여유로움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조금 있으면 단풍이 불타오르면서 본격적인 가을산행이 시작되고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번쯤 산에 오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모키 마운틴이나 릿지 마운틴, 블루마운틴,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스톤 마운틴도 휴식을 취하고 사색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청정한 하늘 아래서 불어오는 상큼한 바람, 그 바람에 살랑거리는 코스모스, 그 위를 맴도는 고추잠자리. 가을엔 바람이 불어도, 햇볕이 내리쬐어도, 그리고 비가 내려도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산자락의 들국화들이 향기롭고, 이름모를 다양한 풀꽃의 향기가 넘쳐나는 산길을 걷노라면 마음도 어느새 맑아진다.
가을 산행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울긋 불긋 물들어오는 단풍 때문일 것이다. 수려한 산자락에 물들어오는 가을 단풍은 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있다.
허나 우리의 일상(日常)은 어느때보다 답답하고 초조하다. 긴 불경기의 터널이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라크와의 전쟁설로 마음이 어수선하고 소비심리가 위축돼 연말경기마져 깊은 수렁으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적은 자본으로 근근히 지탱해 왔던 한인들의 스몰 비즈니스가 위태로운 지경이다.
최근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놓고 부시 대통령과 의회가 합의함에 따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승인하지 않을 경우에도 이제 이라크와의 전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직접적인 군비 지출 및 그에 따른 미국 내 여파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간접적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이번 전쟁은 주요국 경제의 부진한 회복세를 더 악화시켜 세계를 침체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전쟁에 대한 전통적·교과서적 견해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경제를 부양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단순논리로 설명하기에는 이라크 전쟁은 너무 복잡한 양상을 가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라크와의 전쟁은 비단 국지전(局地戰)이라 하더라도 전 세계 상품 및 서비스는 물론 투자의 흐름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고, 생산이 줄어들 뿐 아니라 투자자 및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지면서 민간소비 및 투자 또한 급감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미국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내년에도 미국 경제가 저성장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CEO 모임인 `비즈니스카운슬’이 최근 미국내 주요 대기업 CEO 75명을 대상으로 경제 전망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전체의 65%가 내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5-3.0%에 머물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올 상반기 성장률 3.2%를 밑도는 것은 물론 최근 폴 오닐 재무장관이 밝힌 3.0-3.5% 전망에도 못미치는 것이다. CEO들은 또 향후 10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에 대해서도 2-3%에 그쳐 과거 10년간의 성장률인 3.5%에 못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지난 3일 뉴욕 타임스가 ‘미국 경제 디플레’를 경고한 가운데 미국의 소매업계는 오는 11월 하순의 추수감사절(11월28일)에서 12월의 성탄절에 이르는 `홀리데이 시즌’의 판매 전망이 30년만에 가장 불투명하다며 울상이다.
증시 폭락, 기업 스캔들, 감원 등 우울한 경제뉴스가 여러달째 이어지고 있는데다 이라크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의 불확실성까지 겹쳐 어느때보다도 `냉랭한’ 시즌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월마트나 시어즈로벅, 페더레이티드 백화점 그룹, J.C 페니, 타겟 등 소매업체들의 올 4/4분기 판매신장률이 작년에 비해 현저히 낮을 것으로 예측하는 등 무엇하나 희망적인 뉴스가 없다. 한인타운도 그 어느때보다도 우울하기만 하다. 이럴때일수록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걱정보다는 긍정적 사고와 경제 동인을 위한 적당한 소비, 시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건강한 우리들의 마음이 문제일 것이다. 원효는 행·불행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갈파했다
원효대사가 중국 유학 길에 심한 갈증을 느껴 시원하게 마신 물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었다. 원효는 심한 구토를 느껴 전 날 먹은 음식까지 몽땅 토하는 고통속에서 큰 진리를 발견하고 참 깨달음을 얻었다. 일체의 사상(事象)이 오직 마음의 분별에서 생긴 것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밤중의 마음과 아침의 내 마음이 다르지 않을 터인데 모를 때는 시원하던 것이 알고 나서는 기분이 좋지 않으니 더럽고 깨끗한 것이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갑갑한 일상을 훌훌털고 자연과 동화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자연이 주는 이치를 발견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관조해 보노라면 이 어려운 시기를 타파할 지혜도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아니면 또 바빠서 언제 자신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겠는가. 나무들은 한 해를 마감하며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닥쳐올 모진 겨울을 준비하면서 그 아픔을 단풍이라는 아름다운 빛깔로 승화해 낸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온갖 끝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어지는 인간의 욕심과 비교하면 참 부끄럽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진부한 일상을 탈출해 한번쯤 단풍빛을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사색하는 가을산행을 가져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크게 필요할 것 같다. /ejlee@koreatimes.com
<취재·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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