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오곡을 거두었으나 왠지 마음이 허전할 때 글께나 하는 사람들은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 하여 등장 밑에 책을 펴놓고 글읽기에 더욱 정진을 했다. 그러나 가난한 서생들이야 기름 살 돈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진나라 차륜은 반딧불을 모아 그 빛으로 책을 읽었고, 손강은 눈빛을 등불 삼아 책을 읽었다. 그래서 ‘형설(螢雪)의 공(功)’이란 말이 나온 것이며, 대학졸업식 때 총장이 졸업생에게 주는 메시지로 이 말을 잘 쓴다.
「하루에 네끼를 먹어야 하는 세상」이란 조반 점심 저녁에 마음의 양식인 독서를 하나 더 가미한 것이다. 괴테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당신은 책이야말로 정신의 밑거름이라고 말씀하시더니 요새는 별로 독서를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그러자 괴테는 『그렇다. 뽕나무 잎을 먹고 있는 누에도 ‘고치’를 내뿜고 있을 때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법이다』라고 대답했다. 고치란 누에가 실을 토하며 제 몸을 둘러싸서 타원형으로 얽어 만든 집으로, 빛이 희고 맑아 이 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는다. 그런데 여기서 누에가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다는 괴테의 비유는 독서를 하고 쉰다는 뜻이 아니고, 독서에서 얻은 생각이나 지혜를 되씹어 길들인다는 말이다.
가을을 「독서의 달」이니, 「독서주간」이니 하는 말은 이제 진부한 구호가 되었다. 하루라도 고전이건 신간이건 책을 읽지 않으면 도도하게 흐르는 큰 흐름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책은 책대로 신문이나 TV 또는 PC에서 느낄 수 없는 감취가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책을 많이 읽기로는 덴마크 사람을 첫째로 꼽는다. 그들은 계절이나 시간 또는 장소에 관계없이 책을 읽는다. ‘한 사람은 독서를 의미하고, 두 사람은 대화를 의미한다.’는 말도 그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 사람도 독서를 꽤 하는 편으로 ‘문화인은 퇴근길에 서점을 들른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총리는 재임 중에도 주말에 서점을 꼭 들렀다. 하루 네 끼는 물론 주말에는 눈요기까지 하는 셈이다.
본국의 경우 평균 독서시간은 평일 38분, 주말 34분이고 성인의 22.8%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얼마 전에 조사됐다. 그리고 통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 성인은 연 평균 9.1권의 책을 읽었으며 이것은 일본 성인의 평균독서량 19.2에 비해 절반 수준도 안 된다. 선진국은 국민 총도서량에 비례한다는 척도로 볼 때 우려할만한 대비다.
책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는 TV나 PC 등 전파 매개체를 통해 얻은 것보다 또 다른 고차원의 사고력과 변별력을 우리에게 준다. 지금 이 세상에는 한 장의 얄팍한 지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또 대화할 수도 없는 것이 적지 않다. 하루가 멀다고 급변하는 세상 탓이다. 보통의 경우 모른다는 것은 다만 불편과 불이익을 가져오지만 진리(眞理)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의 소중한 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바빠서 독서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해야 할 일들, 만나야 할 사람들이 줄줄이 있을 것이다. 사업은 바빠야 하지만 마음의 양식 마련도 어느 정도는 바빠야 한다. 마음의 양식이 건전한 사업가를 만들기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 망중한(忙中閑)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동파(蘇東波)의 친구 황산곡(黃山谷)의 말에 "사흘만 책을 읽지 않아도 거울에 비친 얼굴이 미워진다"했고, 왕안석(王安石)은 "사흘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세상이 캄캄하다"고 했다. 얼굴만 보아도 평소에 책을 읽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다는 말이겠다.
못나도 사람을 끄는 얼굴이 있고, 잘나도 전혀 매력이 없는 얼굴이 있다. 곧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고 얼굴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이다. 얼굴의 “얼(魂)"은 정신, “굴"은 ‘골(谷)", 즉 정신의 골짜기, 바탕이란 뜻이다.
그리고 사람이 책을 읽지 않으면 목소리만 크고. 메아리(echo)가 없다는 말도 있다. 목소리만 컸지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책 읽는 남자는 무섭고, 책 읽는 여자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눅진한 책냄새가 나는 집! 은은하게 코끝을 감싸는 서재! 이런 집, 이런 서재는 언제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현대적 감각으로 호화롭게 꾸며진 공간이 주는 눈요기에 비할 바가 아니겠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보다 풍성한 사람이 되는 것.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아버지의 공간’ ‘아버지의 사랑방’ 서재를 갖추어 보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삶을 얘기해 보는 것. 이러한 것들을 이 가을철에 한대 묶어 생각해 보자. 「샘터 가족은 새로운 샘터를 찾아, 하루 한 쪽 이상의 책을 읽습니다」월간 "샘터" 뒤 표지 아래쪽에 쓰여진 말이다. /ikhchang@aol.com
맴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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