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니만 마퀴스(Neiman Marcuss)나 티파니(Tiffany)에서 파는 고급 외제품들을 서울에서 사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남의 압구정동에 있는 백화점이나 부티크에 가야 했었는데 지금은 분당 내에서도 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부의 분산 때문인지, 아니면 미녀들의 폭발적 수요욕구 덕분인
지, 미국 제품의 인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특수층으로 보이지 않는 일반
소비자에게도 이들 외제품의 가격이 별로 개의할 사항은 아닌 듯 하다. 이
들 물건들은 미국의 중상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마구 집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소비자들의 외제품 선호 성향이 더 광범위해진
탓일 것이다.
한국의 영어학습 열기는‘영어 잘하기 범국민운동’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뜨겁다. 영어를 잘해야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현상은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 직장인들도 영어실력이 부족하면 승진이나 좋은 자리로 발령은
꿈도 꿀 수 없고 회사 내 핵심그룹에도 끼지 못하며 주변에서 찬밥신세가
되기 일쑤라고 한다. 영어에 대한 나라 전체 분위기가 이 정도니 영어 잘하
는 사람은 만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된다. 토익 점수로 인생순위를 정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극성스러운 부모가 아니라도 영어의 중요성을 가
볍게 볼 수 없으며, 거의 본능적으로 자식을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알
고 이에 대처한다. 영어 개인 교습을 시작하는 나이가 갈수록 낮아지고 강
사도 발음과 외모가 매끈한 선생으로 정해야 부모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 같
다. 아무리 일류대 출신이라도 미국 본토 발음으로 가르치는 선생보다 못하
고 똑같은 본토 발음이라도 자기와 얼굴색깔이 같은 교포 선생보다는 금발
의 미녀를 강사료가 높더라도 단연 선호한다. 한 걸음 앞서는 부모는 아예
아이 교육을 위해 한쪽 부모가 자녀를 대동하고 미국으로 이사를 오던지,
그것이 안되면 애만이라도 미국으로 보내야 체면이 선다.‘출산 원정’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혀 꼬부라지는 발음을 정확히 하자면 자녀들의 혀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 한다. 발음만 멋있게 흉내 낸다고 미
국인과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대학 졸업생들이 10년씩
영어 공부를 하고도 영어 의사소통이 불편한 이유는 한국의 입시 위주 영어
교육 때문이다. 얼만 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미국인 동료와 함께 신
문 일간지에 실린 대입 영어시험을 같이 쳐보기로 했다. 그 결과 20년 이
상 미국에서 생활해 온 필자가 합격 선에 미달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인 동
료의 가상점수는 필자보다도 낮게 나와 어리둥절해진 적이 있었다. 한국 영
어교육의 두드러진 약점이 역설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한국 사람들의 소비성향 및 영어교육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는 반비례로 한
국에서 불고 있는 반미 감정은 사뭇 심각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기존 체제
에 반대해보려는 젊은이들의 시위 선을 훨씬 넘어선 국민 사이에 번진 광범
위한 반미 감정은 이해가 가능한 면도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적지
않다. 서울 학생들의 악성 문화 및 복장 취향에서부터 통일문제에까지 쉽게
‘미국 놈들’탓으로 돌리며 심지어는 9·11 테러조차도 미국이 의당 받아
야할 벌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는 극히 도착된 미국 관은 혼동을 불러일으키
기에 충분하다.
지난 30여년에 걸쳐 각종 공적, 사적 차원의 한미 교류가 엄청나게 불어남
에 따라 양 국민들 사이에 상호이해의 폭이 상당히 넓어졌다. 그 결과가 한
국내의 고조된 반미 감정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재
검토가 시급히 필요한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