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골 가보고 싶었던 것은 오랜 나의 바램이었다. 십 년 전부터 가려고 시도했던 것이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평지로부터 푸른 소나무 밭이 시작되다가 갑자기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바위산인 금오산 정상을 우선 목표로 삼았다. 까치가 울어 아직 민가에서 멀지 않음을 알 수 있을 뿐 동서남북을 알 수 없는 솔밭에는 바람 소리가 무성하다. 솔바람 소리다. 바람 소리는 골짜기를 통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변함 없이 있어 온 것이 바람소리다.
예와 이제가 영원히 이어져 유구할 뿐인 바람소리는 우리 민족기상 즉 끊어지지 않음이다. 저 금오산을 넘어 바로 그 밑의 삼화령 고개에 있다는 미륵 부처님을 향해 신라의 화랑들은 백년을 넘게 오르내렸던 이 길이 아니었던가. 향과 차와 향로와 다기를 넣은 걸망을 지고 단숨에 다람쥐처럼 솔밭을 달렸을 신라의 청소년들인 화랑을 그리워하여 본다. 지금 육군사관학교를 화랑대라고 하여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의 육사 화랑들은 무리를 이루는데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수련과 기상과 도를 닦는 단체인지는 나는 알지를 못한 채 이 신라의 숲 속을 걸어가고 있다.
무수한 수도승들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고 향가를 불러 민초와 산천을 노래했을 것이다. 또 최근에는 경주사람 최재우도 이 남산의 솔밭을 걷고 또 걸었을 것인데 솔바람 숲속에서 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동학이란 이름으로 농민의 민족의식을 일으켜 흰 옷 부대를 거느리기는 했지만 그 참혹한 패배는 회한과 분노가 되어 지금 부는 솔바람 속에 섞여 있는지도 모른다.
솔밭을 지나면 바로 암벽으로 깎아지른 돌산이 계속된다. 검은 까마귀가 이등성 저등성의 돌산을 날아들면서 꺄욱거리는데 검은 몸빛을 청산에 어울려 그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민가에서는 까치를 길조로 반겨하지만 산 중턱에서는 까마귀 세상이 되어 귀함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면 금빛 나는 까마귀인 금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까치는 마을과 숲에 있고 검은 까마귀는 산중턱과 바위에 있는 것이니 금오는 산꼭데기에 사는 것일까. 천년이 넘도록 신라인들이 찾아왔던 금까마귀(금오), 그리고 지금과 미래에 무수한 사람들이 찾아 나설 금까마귀, 그동안 과연 몇사람이나 금까마귀를 보았을는지 나같은 속한의 눈에는 금까마귀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안개 속에만있어 당황스럽기만 하다.
금오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남산의 바위 암벽에 부처님을 조각하기 시작했으리라. 남산의 바위 바위마다 불상이 다 조각되고 있을지경이니 중생의 소원과 소망은 자고로 끝도 한도 없는 것인가 보다. 바위 산에는 숲이라는 것이 없다. 바위 틈에서 자연적인 분재가 된 기기묘묘한 키 작고 굽은 나무들이 흰 구름 푸른 산을 마음껏 희롱하고 있을 뿐이다.
금오산 산정은 경주를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는 경주 중앙의 낮은 산이다.(450미터) 서쪽으로는 영남 알프스가 운문산과 가지산을 거느리고 운문사 석남사 통도사등을 골짝마다 품으며 점점이 작아지면서 평야까지 내려오는데 그 겹쳐진 산봉오리는 무엇으로 그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겠는가. 서북으로 널찍이 뚫려있는 건천 고개도 보이고 동북쪽으로 안강으로 빠지는 산마루가 대단한 조망을 보여주고 있다.
해가 뜨는 동쪽에는 토함산이 이마처럼 마주 서 있는데 그 산자락의 숲속에 숨어있는 불국사의 종소리는 이곳 금오산 정상에서 들어야 은은한 그 맛이 제격이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여 바로 아래에 있는 암자로 내려와 여장을 풀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암자의 뜰에 나가 보아도 천지가 캄캄하고 고요할 뿐이다. 반달에 지나지 않는 오늘 밤은 새벽에야 달빛어린 산을 볼 수 있다는 설명에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해보지만 쉽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새 벽을 안고 새우잠이 들었는지 새벽도량석소리에 깜짝 잠이 깨이자 방문부터 열어 젖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을 따라 맑은 가을 하늘의 반달이 비추는 금오산을 볼 수가 있었다. 아! 이것이 신라의 달빛인가. 법당의 예불도 잊은 채 나는 십 분쯤 산을 올라 바위에 새긴 마애불상 앞에 앉았다. 온 골짜기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이 낭떠러지 위의 거대한 불상은 달빛아래 그 모습이 더욱 또렷하다. 아마도 금까마귀가 이곳 어디에 숨어 있을 듯한 느낌으로 쳐다보고 또 바라보아도 금까마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아침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에 바위를 돌아내려 오면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만일 내가 다시 이 사바세계의 손님이 되어 돌아온다면 금오산 바위가 되어 내 바위몸에 부처님을 문신으로 새기고 싶다고. 그러고 몇 천년을 버틴다면 마침내 금오신화를 완성할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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