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타운의 웨스턴 길을 북쪽으로 달리다가 6가와 만나서 좌회전을 하였다. 하자마자 도로의 갓길에 서있던 모터사이클의 경찰 두명이 차를 세우라고 사인을 보낸다. 영문을 몰라 하는데 좌회전이 금지되어 있는 길이란다. 순간 잔머리를 굴려 “No English”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안 통하면 더 큰 망신이므로 순순히 응하였다.
새로 생긴 제과점에서 빵을 사면 길다란 라이터를 공짜로 준다기에…(케익에 불붙일 때 뿐 아니라, 벽난로에, 바비큐 그릴에 불붙이기에 좋은 것) 상품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급히 가다가 티켓을 받은 것이다. 공짜로 1불 99전에 불과한 것을 얻으려다 그랬으니 보통 속상한 게 아니었다.
집으로 온 법원의 설명서엔 벌금이 109불에다 교통위반자 학교를 갈 것이면 29불의 수수료를 더 내라고 한다. 당연히 학교를 가는 것으로 해서 138불의 수표와 함께 보냈다. 안전교육을 8시간 받아야 벌점을 면할 수 있다. 미루고 미루다 찾아간 토요일의 위반자 학교엔 범법자?들이 20여명 앉아있었다. 또 다시 20불의 교육료를 내고 등록을 하였다.
8시간의 교육이면 종일 걸리는 교육이므로 단단히 채비를 하고 갔다. 경험자의 조언을 수집하여 종일 마실 커피와 간식을 준비하고, 틈틈이 읽을 신문과 책도 한 보따리 가져갔다. 교통사고의 처참함을 비디오로 보여주고, 법규에 대한 교육을 종일 받는데 너무 지루하단다. 별도로 시간을 때울 책을 가져가라고 했었다. 나는 옆자리에 누가 앉는 것이 싫어서 보온병으로 샤핑백으로 앞과 옆을 맡아 놓았다. 교회에서 성가연습을 할 때나 강연을 들을 때에도 남들과 바짝 붙어 앉기 싫어서 늘 그렇게 해왔었다.
교실엔 내 또래의 중년 여인 한 명을 빼곤 다 남자들이었다.
가만 둘러보니 남자들은 사이를 떼지 않고 거의 붙어 앉아있었다. 중년 여자는 둘레 둘레에 소지품을 놓고 맨발의 다리를 앞좌석에 뻗쳐 얹고 다섯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있었다. 연신 핸드폰을 써가며… 나도 다르지 않으면서 남이 그렇게 하는 걸 보니 꼴불견이었다. 중년 아줌마의 고집, 이기심, 무례함이 다 느껴지는 것이었다. 슬그머니 보온병과 책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렇게 안 보이고픈 욕심이었겠다. 그래도 애초에 그런 자리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내 옆으로 옮겨 앉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둘레가 비워져 있는 곳에 섬처럼 앉아 있으려니 격리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누굴 탓하랴. 마침 젊은 청년이 지각을 하여 빈자리를 찾다가 내 옆에 앉았다. 나도 모르게 반갑게 웃었다. 청년으로 인해 왕따를 면한 것 같았다.
아들 뻘쯤 되는 20대 학생이다.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노란 신호등에서 급히 지나가다 빨간 신호로 바뀌는 바람에 적발이 되어 374불의 벌금을 물었단다. 내가 받은 벌금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속도를 줄여야 할 학교 앞에서 오히려 스피드를 낸 아저씨는 435불의 벌금을… 해질 녘에 라이트 켜는 걸 깜빡한 젊은이는 집 앞에서 79불의 벌금티켓을 받았다고 한다.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수다를 떨다보니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그분들과 아무 대화도 안 했다면 이 교육이 너무 억울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커피와 간식을 나눠먹고 신문을 함께 보면서 새삼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을 실감했다.
나는 일단 친해진 사람들과는 농담도 우스갯소리도 잘한다.
동창회나 교회에서는 ‘남을 웃기는 사람’으로 통한다. 내가 빠지면 모임이 재미없다고 나의 참석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사람도 있다. 나를 여유 있고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 오해들을 하고 있다.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낯을 잘 가린다. 예민하고 잘 따진다.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교통위반자 학교에 와서 교통법규보다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고 하면 웃을 것인가? 남을 보고 나를 돌이켰으니 하루동안의 자유 없는 수감생활?이 그리 아깝지만은 않은 날이었다.
이정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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