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추수감사절 때 읽은 한 신문 기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우스다코타주의 한 시골 마을이 토네이도에 휩쓸려 풍지박산 됐다. 채 3백명도 안되는 주민 가운데 수십명의 사상자가 생겨났고 소방서, 우체국, 도서관 등 공공건물이 모두 날아갔다. 1백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 지도에서 삭제돼야 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추수감사절 주일 아침, 이 마을의 한 주민 차고 안에서 찬송가 합창소리가 우렁차게 울려나왔다. 교회를 복구하지 못한 신도들이 동네에서 제일 큰 차고에 모여 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하룻밤 새 홈리스가 돼 감사할 일보다 원망할 일이 훨씬 많았을 마을 주민들은 그러나, 한결같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잃은 것이 많았지만 얻은 것은 더 많다고 강조했다. 집을 잃은 것은 목숨을 잃는 것에 비하면 큰 축복이라고도 했다. 정부 지원금으로 새 집을 지을 수 있게 됐고, 덤덤했던 부부간의 사랑이 재충전됐으며, 종전엔 소 닭 보듯 했던 주민들도 친목과 협동심이 돈독해졌고 새로 넓직한 교회를 지을 수 있게돼 신앙심이 더 깊어졌다고 자랑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절기 상으로는 비슷한 명절이지만 그 배경이나 성격은 큰 차이가 있다. 추석이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토착농부들의 잔치인데 반해 추수감사절은 고난 겪은 나그네들의 축제로 비롯됐다.미국의 첫 이민 집단인 청교도가 이 땅에 도착하자마자 지금의 미국인들처럼 잘먹고 잘 살았다면 추수감사절은 없었을 것이다.
종교적으로 박해받은 청교도 101 명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620년 9월 16일 영국 플리머스를 출항한 후 천신만고 끝에 요즘의 감사절 무렵인 11월 21일 신천지에 상륙했다. 그러나 일행 중 태반이 질병과 영양실조로 항해도중 죽었고 남은 사람들도 농사를 못 지어 그 다음해 엄동설한에는 굶어죽을 판이었다. 이 때 인디언 원주민 스콴토가 옥수수와 호박 등 토종 곡물을 들고 나타났다. 이 씨들을 재배해 이듬해 수확을 거둔 청교도들은 하나님께 감사예배와 함께 스콴토 및 그가 속한 왐파노악 인디언 부족을 초청, 사흘간 함께 먹고 마시며 이들의 우의에 감사를 표했다. 첫 추수감사절부터 사흘 연휴였던 셈이다.
Thanks-Giving Day는 역경 속에서도 감사하면 반드시 축복 받는 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매우 미국적인 명절이며, 실제로 미국인들이 연중 가장 중시하는 명절이기도 하다. 추수감사절을 하필 목요일로 정해 놓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다른 공휴일들이 기껏 사흘 연휴인데 비해 추수감사절은 나흘 연휴까지도 가능하도록 차별화 해놨다고 볼 수 있다.
청교도만큼은 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인 이민자들도 역경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언어문제나 인종간 갈등을 겪는다는 점에서 청교도들도 생각 못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우리 한인들에게도 매우 어울리는 명절이다. 특히, 침입자의 입장이었던 청교도들이 인디언 원주민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살아남았듯이 우리 한인도 선착자들이 닦아놓은 인권 혜택을 누린다는 사실은 크게 감사해야할 일이다.
‘Thanks-Giving’은 말 그대로 감사거리를 베푸는 행위이다. 청교도들은 마음으로만 감사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 스콴토 일행을 환대했다. 한인들은 근엄을 내세우는 유교사상의 영향 때문인지 감사를 말로 표현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데 익숙지 않다. 어쩌다‘Thank you’라는 말을 들어도 “우리 사이에 무슨…”이냐며 핀잔하기 일쑤다.
불경기 때문인지 감사의 계절에 감사거리를 베푸는 손길이 줄었다는 소식이다. 자선단체마다 들어오는 기부금이 예년만 못한 데 벌리는 손들은 더 늘었다고 한다. 한인사회도 비슷한 현상일 것이다. 한국일보가 올해도 감사의 계절에 벌이고 있는 이웃돕기 모금운동에 많은 독지가들이 십시일반의 정성으로 참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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