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마시고 체한다’는 말이 도대체 뭔가 했다.
얼마전 내가 바로 물 2컵에 체해 아주 혼이 났다.
그날 낮에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친구와 식당에서 ‘산채비빔밥과 된장찌개 콤보’를 둘이 똑같이 시켰는데, 친구는 비빔밥을 3분의 2 정도 먹고 된장찌개는 손도 못 댄 반면, 나는 비빔밥과 된장찌개를 모두 바닥이 보이도록 다 먹었던 것이다.
오후에 일하면서 배가 부르긴 했지만 큰 이상은 못 느꼈는데 집에 돌아와 밥을 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그날 하필 남편이 감기에 걸렸다고 콩나물국을 매콤하게 끓여달라기에 고기에, 멸치에, 조개에, 다시마를 총동원해 시원한 국물을 내느라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갑자기 목이 마른 것 같아서 시원한 물을 한잔 벌컥벌컥 마셨다.
물이 왜 그렇게 맛이 있을까? 연거푸 또 한잔을 꽉 채워 마셨다.
배가 좀 이상하다고, 탱탱 부어오른 것 같다고 느낀 것은 그때부터였으나, 거북한 채로 식탁을 다 차렸다. 아들은 그 와중에 또 치킨 샐러드를 해내라고 이중 플레이를 하길래 좀더 부산하게 왔다갔다하는데 몸이 점점 말을 듣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는 도중 하늘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간신히 끝낸 다음 소파에 뻗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곧이어 약간의 한기와 뼈마디가 쑤셔와 아마도 몸살이 시작되었는가보다고만 생각했다. 속은 계속 이상했지만 배탈이 났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은, 물 2컵 마신 외에 저녁이라고 밥 한 숟갈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 동이 틀 무렵에서야 물로 체한 것을 알게 됐다. 그때까지도 내려가지 않고 있던 물이 아침이 돼서야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낮에 너무 많이 먹은 비빔밥이 미처 소화되지 못하고 있는데 찬물을 연달아 두컵이나 들이붓자 위장 기능이 올스톱했던 것 같았다. 실제로 섭씨 0도에서 4도의 차가운 물은 위에 부담을 준다고 한다. 물론 딱 그 이유뿐이었겠나.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이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리 됐을 것이라고 주위에서 위로들을 한다.
옛날부터 물 마시고 체한 데는 약도 없다고 했다. 민간요법을 찾아보니 물체에는 더덕을 먹으면 좋다고 하였고, 미꾸라지를 달여서 복용하거나 칡뿌리의 생즙이나 달인 것을 먹으라고도 하고, 붉은 팥 10~20알을 씹어 먹거나 물을 넣고 팔팔 끓여서 마시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
물론 이런 요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열흘동안 거의 먹지도 못 하고 조심하며 성난 위를 달래었다. 속이 아프면 배도 안 고프지만, 먹는 것으로 힘을 쓰는 나이에 먹지 못하고 풀타임으로 일하려니 힘에 부쳤다. 그저 딱 한가지, 아픈 것으로 인해 누리는 부대효과가 있다면 살이 빠지는 것. 그것도 웬만한 다이어트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 마지노선 이하로 체중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감격은 아픈 동안의 괴로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 기쁨도 며칠뿐, 그렇게 빠진 살은 요요현상으로 곧바로 반등하고 만다. 그동안 먹지 못했던 억울함을 보상이라도 하듯 증세가 호전되면서 무섭게 식욕이 찾아오기 때문에 원 상태로 복귀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물 한 그릇을 청한 남정네에게 버들잎을 띄워 건네던 여인의 일화가 생각난다.
고려말 이성계가 호랑이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았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물을 청하자 그녀는 물 담은 바가지에 후드득 뜯은 버들잎을 띄워 건넸다. 버들잎을 후후 불어가며 감질나게 물을 마셔야했던 이성계는 여인에게 그 연유를 물었고, 목마를 때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하기 쉬워 그리했다는 설명을 듣고는 감탄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다. 그 여인은 후에 이성계의 아내가 되고 태조의 총애를 받아 현비로 책봉되어 조선 최초의 국모인 신덕왕후가 되었다.
누구는 물 한 그릇으로 왕비가 되었는데, 그런 지혜는커녕 혼자 두컵을 거푸 마시고 체했으니 어디 가서 호소하기도 창피한 일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