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야 비행기를 타고 하늘나는 일이 아무일도 아니지만, 라이트 형제가 12초동안 하늘을 날았던 최초의 비행이후 실질적으로 비행이 가능한 비행기가 만들어진백여 년 전(1905), 초창기의 비행여건이란 대단히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험과 개척의 역사에 참여했던 간 큰 여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대서양 횡단비행에 참가했던 아멜리아 에어하트이다. 미국 캔사스주 애치슨에서 태어난 아멜리아는 어린시절 나무타기와 쥐 사냥을 좋아하던 말괄량이 였다고하는데 사춘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적인 특성에 맞추기보다는 어린시절의 생생한 모험심을 잃지 않았고, 이후 여성의 역할에 대한 통념에 구애되기를 원치않았던 그녀는 삶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정열을 갖고 몰두할수 있는 일을 찾다가 발견하게 된 것이 비행이었다.
린드버그가 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이듬해인 1928년 봄, 아멜리아는한 부유층 여성이 후원하는 두번째 대서양 횡단비행에 참가하게 된다. 그녀 자신의유머를 빌자면 ‘감자 자루처럼 비행기에 실려갔을 뿐’ 인 단순한 동승자였으나 그 시절 여성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하며 날았다는 사실은 미국과 유럽에서 대서 특필되었고, 강연자로 작가로 항공사의 간부로 초빙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퍼듀 여자 대학에서 여성의 진로에 관한 카운슬러로 까지 활동하게 되었다. 이처럼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되었던 대서양 비행이 실상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고 인식한 그녀는 1932년 다시한번대서양 횡단 단독 비행을 시도해 성공한다. 이후에도 미대륙 단독횡단등 비행사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나, 그녀의 40세 생일을 앞둔 1937년 7월 태평양 한복판 날짜 변경선 지점에서 실종되고 만다. 프랑스에서 생떽쥐베리의 실종만큼이나 미국에서 에어하트의 실종은 잊혀지지않는 사건으로, 그녀의 실종은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에어하트의 인기는 1920~30년대 초창기비행이 대중에게 불러일으킨 매혹과 무관하지 않을것이다. 게다가 겸손하고 담담한 언행, 수수하면서도 멋이 배어나는 차림새,수려한 외모와 성별을 넘어선 모험심은 그녀를 대중매체의 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모든 명성과 인기는 헛된것이 아니었으니, 그녀는 푸른 하늘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동시에 여성으로서는 미답의 분야에 여성의 진로를 개척한 선구자였다.그 상징적 비행의 의미만큼이나 용감하게 살았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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