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잘 아는 후배가 이런 질문을 해왔다. "IT 업종은 이제 끝난 거 아니에요?"
IT 업종이 모여있는 실리콘밸리의 지역 경제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탓이었다.
기술 업계가 어쩌다 이런 판에 박힌 모습이 됐을까?
그 원인에 대해 기술 업계의 지도층은 갖가지 희생양을 들먹이며 책임을 면하려 하고 있다.
필자도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 있지만 최근 많은 업체들의 책임 회피는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선 그들은 닷컴 붕괴를 꼽았다. 그리고는 탐욕스런 자본가들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무어의 법칙(컴퓨터 칩 속에 들어있는 트랜지스터의 숫자가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이 이제는 시효가 다 됐다는 식으로 현재의 문제들을 연계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기술은 일직선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스런 일이지만, 진보에는 주기적인 소강 상태가 따르기 때문이다.
포스트 무어의 법칙 시대에 대한 불안한 예측들을 보면 그 예측들이 어떤 통찰력을 보여준다기보다 사람들의 인내심이나 성급한 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에 컴퓨터 업계는 훨씬 더 안 좋은 상태였다.
판매는 부진했고 가정에서 PC를 사용하는 이용자들과 기술 전문가들에게 주로 제품을 제공하던 업계 전반적으로 파산과 합병이 만연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곧 더욱 강력한 16비트와 32비트짜리 컴퓨터라는 형태로 향상된 하드웨어가 나타났다.
그리고 기업에서도 보편적으로 PC를 채택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게 되는 LAN의 출현과 함께 수십억 달러짜리 사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1990년대 초에 들어서 업계는 다시 한번 벽에 부딪친 것처럼 보였다.
당시 가장 멋진 신기술은 정말이지 엄청난 소음을 내는 CD-ROM 정도였다.
펜 컴퓨팅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10년 뒤에 팜과 PDA가 나오기 전까지는 펜 컴퓨팅도 별 쓸모도 없었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그 중 나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프로디지(Prodigy) 정도였고 그 뒤를 이어 컴퓨서브와 아메리카 온라인(한참 뒤떨어진 3위였다) 정도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넷스케이프라는 것이 나타났고 이후의 전개과정은 우리가 익히 듣고 경험했던 대로 인터넷이라는 기반하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오늘날 실리콘 밸리는 최근에 있었던 닷컴 열풍이 지나가고 자신의 상처들을 달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이 상황을 "기다리면서" 지나가면 정말 그 후배의 말처럼 IT가 끝나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또 한번 시련을 겪고 있다.
그러나 웹 서비스의 표준화와 신기술의 개발, 리눅스의 눈부신 약진, 무선 기기의 일상화 등 새로운 혁명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도 이 길을 간 적이 있으며 그 종착역이 어딘지도 알고 있다.
우리가 작년에 저지른 어리석음을 다시 반복하기 전에 역사를 돌아본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김형백
dkim@benese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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