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 빛이 갈색을 몰아내고 산야가 온통 풀과 잎으로 덮일 전초에 와 있다. 이런 와중에 있는 4월은 봄의 가장 중심에 자리를 잡은 날들이다. 만가지 꽃이 되어 환희로움을 자아내게 하고 새 잎이 기지개를 펴서 생명의 약동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시인 엘리옷은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는 봄의 중심에서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가늠해 보고 또한 인생을 총체적으로 직감한 것이 아닌가한다.
그의 시 버려진 땅 황무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월은 잔인한 달 / 라일락 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 무상함과 유상함이 연속하고 교차함을 비감으로 느끼는 우리의 심금을 유감없이 울려준 명시라 할 것이다.
이 비감해 하는 마음을 잔인한 것으로 파악한 시인은 大悲의 그림자를 본 듯하다. 알고보면 有情은 아픔이고 아픔은 잔인함이 된다는 것을 모든 현인들은 다 알고 있다. 떨어져 흩어져 버리지 않는 꽃은 없다. 古人들도 화무십일홍이라 하지 않았는가.
꽃의 배후에는 씨앗이 있고 씨앗은 꽃과 잎을 내세워 그 목적을 달성한다. 새 싹을 천년의 희망으로 보는 것도 어림없는 말장난이다. 씨앗이 꽃과 잎을 동반자로 삼지 않는 것은 슬프고 잔인한 일이다. 이렇듯 목적이 수단과 헤어지는 것은 인간의 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법이라 인간의 일생은 슬픔의 연속이요 총체적으로는 잔인함이라 할 것이다. 자식과 부모가 서로 미진함을 평생토록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부부가 일생을 같이 살면서도 동상이몽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이 때문이란 바로 情 때문인 것인데 情은 그 자체가 슬픔과 잔인함을 그 배후에 감추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깊게 어떤 때는 엷게 슬픔과 잔인함이 남겨준 상처를 거듭하다보면 어느새 세월은 우리를 無常의 쓸쓸함으로 인도하고 만다. 우리는 무상을 깨닫기가 어렵지만 세월은 무상함을 무섭게 실현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有情을 편안케 하는 것이 제불보살의 가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무상으로 깨끗해진 유정의 삶을 정토라하여 삼천년 동안 장설하고 있다.
무상을 알고 무상에 올라타야 편안케 된다는 것이니 쉬운 일은 아니다. 진흙소가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자취 없는 이 삶에 4월을 그동안 몇 번이나 찾아왔는지 잔인한 슬픔으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편안함을 보여준 이들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회지 스님은 화엄경을 공부하다가 두순 스님의 법신송을 읽고는 정신을 잃었다. /회주 땅의 소가 벼이삭을 먹는데 / 익산의 말이 배가 불렀다/ 천하의 명의를 찾아 병을 물었더니 / 집에 돌아가 돼지의 왼쪽 허벅지에 찜질이나 하라더군 / 그는 석두산에 들어가 구름만이 머무는 개울가에 운계암을 짖고 이십년이 넘도록 산림 속에 살았다. 지나가던 객승이 산중에 사는 맛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노래를 지어 답하였다 / 산중에 머물면서 사립문을 닫다 / 장작 개비 3개를 엇자에 겹쳐놓고 불을 지핀다 / 아 멋진 불빛이여 / 무슨 붓으로 그 문체 다 말하리 / 스님은 환갑이 넘자 따뜻한 남도로 돌아가 옛친구에게 의지하여 여생을 보내려 했으나 그 도반 스님이 큰 절의 주지가 되어 감에 곧바로 발길을 돌렸다. 다시 시를 지어 읊되 / 온갖일 모두 잊고 발자취를 쉬었지 / 들짐승과 같이하며 삼베옷 벗은날 없었네 /몇번이나 꿈속에 보았던가 / 칡넝굴 우거진 암자에 누워있는 이 빈몸을/ 그는 有情을 잊고 무상을 증특하여 슬픔과 잔인함이 없는 저 淨土에 살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직 갈길만 탐내었지 길을 잘못 들어선 줄 깨닫지 못한 과오를 회상해 본다. 초조한 마음에는 항상 성냄이 잦은 법. 이로 말미암아 주위의 사람을 외롭게 만든 슬픔과 잔인함을 영원한 세월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세상 길손이 된 처지에 길에서 원한을 맺음은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일이다.
열반경에서는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거센 불길이 땔감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불이 나와 다 타면 그것을 이름하여 땔감을 태웠다고 한다고. 그러나 저러나 봄비라도 한차례 내려 大地는 원망을 품지 않음을 보여주어 우리의 잔인함을 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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