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에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하다고 느낀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
는 게 어색해진다.’ 서른이 되면 그 무엇인가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나는, 서른이 되던 해 아침 여늬때와 다름없이 눈을 떴고, 세상은 아무것
도 변한 것이 없었다. 그 나이면은, 한 뼘의 땅과 가족이란 울타리를 만들
어 정박할수도 있으련만, 서성거려지던 내 나이 서른에 그저 잔치가 끝났
다고 말할수만은 없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었다. 정박하려는 욕망과 떠나려
는 욕망...오랜 묵은 것들에 퇴거를 신고하고 익명의 풍요로운 도시 로마를 향해 여행을 떠나느냐, 아니면 세상에 대해 겸허해져서 하나의 의무를 찾고봉사를 자청한 나머지 한 그루의 나무를 심거나 어린애를 만드느냐. 지극히 몽상가인 나는 한 뼘의 내 땅을 갖는 대신, 내 자신이 가장 자유롭게 지냈던 곳, 나 자신의 도덕과 척도, 기쁨과 시선의 깨어남을 체험했던 로마로 떠나기를 선택했다. 이를테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내가 명명한 익명의 도시 로마 이곳에다 그렇게 나는 내 이상의 짐꾸러미를 풀었고, 그 해 여름 캘리포니아에서는 흔하지 않다던 열대성 폭우가 베이지역에 연일 쏟아쳤다.
서른을 넘어서면서는...한해 한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좋았다. 분별력이생기는 것, 사람을 볼 줄 아는 것, 죽음이 가르치는 삶의 의미-문득 아, 인생이 뭔지 알것 같아 라고 말하고 싶던 삼십대를 나는 열심히 즐겼다. 그리고는삼십대의 끝자락이다. ‘모든 것의 안이 들여다 보이는 것’ 같은 중년이 코 앞에 있다는 것이 편치 만은 않은데 마치 등이 서늘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 서글프고도 아름다왔던 삼십에서 구년을 더 보낸 나는 드디어 정착과 떠남의 이분법의 나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삶에서 만고 불변의 유일한 진실이 무상이 아닌가. 나이는 곧 시간이고,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시간의 흐름을 즐기고 나자신의 변화도 바라보게 되겠지. 그렇다. 나는 이제 새로 시작하는 나이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 나이에 고갱은 타히티로 갔고, 박완서 선생님은 소설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이제 나는 내가 가진 한 뼘의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내 밭을 일구고 싶다. 가족의 울타리를 튼실하게 만들고 그 안에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도 심고 싶다. 이제는 그렇게 내 자신의 삶을, 우리라고 명명되어지는 그대와 나의 삶
을 하나로 묶어, 정직하게 마주 보고 싶다. 그러므로, 마흔이란 생소한 나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에 지면을 허락해 주신 한국일보와 손수락 논설위원님, 그리고 정경애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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