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바라보면 거기 늘 낡은 모자가 걸려있다. 흐트러지지 않은 모양새로 창문과 창문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며 걸려있는 모자는 사계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중후한 바리톤 같은 음색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묵상하는 색상으로 은은히 정감이 가는 색상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듯한 겸손한 색으로 깊은 연륜의 의미와 어울릴 수 있는 회색 모자일 뿐이다. 그런데 그 절제된 색과 인자한 품격으로 인해 늘 보아도 편안하고 어느 사이 내 마음까지도 닮아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반듯하게 구김하나 없이 편편하게 챙을 두르고 그 위로 우부룩하게 솟은 두 봉우리 사이로 아늑하게 쉬어갈 수 있는 구도가 되어 그윽한 멋을 내기도 한다.
모자는 바닥과 밑 자리가 어울리지 않은 듯한 묘미를 갖추고 있다. 모자가 있는 자리는 대개의 경우 선반이나 벽 위쪽으로 높은 곳에 있어야 어울린다. 사람의 신체 부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가장 그럴듯한 높은 위치에 있어도 때에 따라서 자신을 낮출 줄 아는 미덕으로 가슴께로 내려와 수그리기도 한다. 그만큼 모자는 따뜻함과 배려함이 묻어있어 낡은 모자이지만 되려 은혜롭기만 하다.
우선 단순하게 바라보는 면에서는 유행에 뒤처진 듯한 지친 모습으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나름대로 심리적인 경건한 무게감으로 주변을 들뜸이 없이 차분하게 한다. 그래서 답답하지가 않다. 오히려 깊이 새기면서 느끼면 우리 마음이 먼저 다가가 무릎을 구부리고 쳐다보는 위엄 속에서 자연스레 체득되는 중요한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
낡은 모자와 대면했을 때 때로는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해 보이기 까지 한다. 아니 낡은 모자이기 이전에 늘 그렇게 보여졌는지 모른다. 황량한 세상을 거쳐 오면서 삶의 중량에 가위눌려져 버려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모자의 너그러움과 배려를 당연한 채로 받아들인 탓이었을 것이다.
세대가 변해가면서 옷장 반쯤 열린 틈으로 낯익게 보여주던 낡은 모자의 위치가 이제는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허무의 심연을 생각케 한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아버지의 위치와 자리다.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을 지켜온 아버지의 위상이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세월 속에서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주름 사이로 얼비치는 계곡이 가뭄처럼 말라보이는 것일까. 과거에는 아버지의 자리는 그 누구도 넘나 볼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한 번도 드러내지 않은 마음 속에 언뜻 보여주는 너그러움으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존경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쉼 없이 흘러왔던 덧없는 세월, 그 속에 나는 가슴 조이며 온갖 희생을 남모르게 짊어진 아버지의 지난날을 실타래처럼 풀어본다. 그러나 다시금 제 자리로 감겨지지 않은 채 헝클어져 버린다. 왜 이렇게 꼬였을까. 언제 부터인지 아버지의 자리가 낯설게 느껴질 때, 그 생소함은 놀라움보다 오히려 슬픔에 가까운 느낌을 갖는다. 그 느낌이 휘모리 바람처럼 나를 힘겹게 휘감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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