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지도자가 강대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하고 경제지원을 해달라고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면 한반도 긴장완화에 협조하고 미국 정부에 도발적인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요즘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이는 지난 68년 김일성이 동해에서 미국 선박 푸에블로호를 납치, 억류한 채 소련에 대해 실질적인 대가를 요구하던 모습이다. 소련은 미국과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북한의 협박에 응했다.
최근 7개월만에 부시 행정부로부터 주목을 끌게 된 북한은 중국의 주선으로 어렵게 열린 중국, 북한 미국의 3자 회담을 무산지경으로 이끌었다. 회담 첫 날 핵무기 보유를 시인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했으며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3일간 열릴 예정이던 회의에 불참했다.
북한은 예측 불허의 정권 또는 비이성적인 정권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같은 판단은 잘못이다. 북한은 나름대로의 계산대로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우선 위험을 조성해 놓고 긴장을 완화할 테니 대가를 지불하라는 식이다. 북한이 단골로 쓰는 책략은 공갈이다.
이는 단기적인 전술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립 집행되는 전략으로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평양정권이 핵 보유를 시인한 것은 핵 보유국가임을 자인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북한의 주요 정책 목표였다. 둘째, 김정일은 단순히 핵 협상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따내는 데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핵을 보유하길 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천명했는데도 미국은 협상 외에는 별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아낼 요량을 갖고 있다. 이들은 부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위협을 통해서 얻어내려 한다. 부탁하는 것을 나약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북한 핵 문제로 외국인 투자가 급감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행히 한국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협박에 말려들지 않고 있지만 북한은 이러한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다자협의가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본다. 김정일이 핵을 갖기를 원한다면 주변 관련국들이 이를 용납할 수 없음을 천명해야 한다. 러시아는 북한에 대해 제재에 반대하던 종전의 입장을 재고할 수 있다고 했고 일본도 납북 문제를 더욱 강하게 들고나올 것이며 중국도 유일한 공산동맹국인 북한을 더 이상 감싸지 않을 것이다.
테러 이후 미국 정국의 분위기와 이라크 승전에 따른 득의를 감안할 때 북한의 핵 게임이 먹혀들지 의문이다. 미국의 매파들이 협상 무용론을 제기하면서 국면이 경색되면 북한의 위협적인 협상술은 무력해질 것이다. 김정일은 스스로 놓은 덫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매파가 옳지 않다는 점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 폐기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지금으로서는 중국이나 국제원자력기구에 의해 재처리 가능한 8,000개의 폐연료봉 가운데 10~20%만을 즉각적으로 폐기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또한 북한이 자신이 만든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빅터 차/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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