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피아노 교사의 레슨방 벽에 누렇게 빛바랜 한 컷짜리 만화 그림이 붙어 있다.
화가 난 듯한 학부모가 “우리 아이가 소질이 없다니요. 그러면 소질을 가르치면 될 것 아니에요!”하고 윽박지르듯 교사에게 따지는 장면이다.
처음 피아노를 배우러와 이 만화를 보고 갸우뚱거렸던 한 어린 소녀는 10여년이 지나 카네기홀에서 4번이나 독주회를 가진 고교생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며 ‘소질은 타고나는 것이지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이 만화의 의미를 통찰하게 된다.
엊그제 날짜 USA투데이의 ‘전미 올해의 고교생 아카데믹팀’발표 기사에 나온 에피소드다. 올해의 고교생 중 하나로 뽑힌 이 중국계 여학생은 부모의 등쌀 없이도 피아노에 몰두했지만, 이 만화에 자극을 받아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온 과정이 소중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학원이다, 과외활동이다 해서 자녀의 등을 떠미는 여느 한인 학부모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난주 열린 LA고교의 학부모 교실에서 한인 교사들이 교육현장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인 학부모들에게 들려준 조언들 중에는 바로 ‘소질을 가르치려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교훈과 맥이 통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른바 명문 학군을 찾아서 이사를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한인 학부모들이 많은데, 물론 좋은 학군, 좋은 학교에서 학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개인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한인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 개인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높은데 정작 학교를 더 낫게 만드는데 스스로 기여할 수 있다는 자세는 되어있지 않다는 게 현장에 있는 교육자들이 자주 하는 지적이다.
흔히 ‘언어장벽 때문에’라고 핑계를 삼지만 참여의 뜻이 있으면 얼마든지 길은 있다는 것이다.
이번주 그라나다힐스 고등학교의 차터스쿨 전환 승인 소식을 취재하며 한인이 이 학교의 운영위원 중 한 명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녀가 몇 년전 이미 졸업했음에도 지금까지 학교일에 적극 참여, 이번 차터스쿨 전환 성사에 다른 학부모 대표들과 함께 발벗고 나선 그의 존재가 한인 학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 학교에서는 이제 다른 한인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뒷받침만 있으면 한국어반 학급수 증설과 한인 학생들을 위한 ESL반 강화 등 현안을 더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인 학부모들이 학교일에 적극적으로 돕고 나서며 목소리를 내는 일이 자녀가 속한 학교를 더욱 좋게 하는데 기여한다는 사실이 비단 그라나다힐스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 종 하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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