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 한국에 있는 친정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3년여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공통된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친구들의 고민은 바로, 한국에서의 영어 조기교육 열풍이었다.
아직 한국말도 서투른 유아들에게 영어부터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앞집에서도, 뒷집에서도 아이들을 영어학원에 보내는 것을 보면서 "이러다 내 아이만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감과 조바심이 생긴다고 했다. 대세를 무시하자니 정말 내가 부모노릇을 바로 하고 있는 것인지 마음에 동요가 일어,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 편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고민거리를 털어놓은 친구들은 당시 두 살이 조금 지났던 내 아들을 보면서 "미르솔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으니까 영어 잘 하겠네. 한국말 알아듣니? 영어로 물어봐야 되니?"라고 나에게 질문했었다.
"아냐, 영어는 무슨...한국말 잘 해. 어차피 학교 들어가면 영어 할텐데,
집에서는 한국말 가르쳐야지."라고 대답한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었다. 한국에 있는 아이들은 한마디라도 더 영어로 말하려고 하는데 미국에 있는 내 아이는 한국말만 하니....
사실 미국에서 2세를 낳아 키우는 한인부모들에게도 자녀의 언어교육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한국어 교육에 비중을 둬야 하는지, 아니면 완벽한 영어구사에 치중해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이 미국시민이긴 하지만 모국의 혈통이 완전히 무시된 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류사회에서도 모국어를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결코 높은 점수를 주지는 않을 듯 싶다. 취업 인터뷰때 모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면접관으로부터 창피당한 한 2세 청년은 자신에게 한국말을 강제로라도 배우게 하지 않은 부모를 나중에 두고두고 원망했다는 일화도 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한국어나 한국음식 등 한국적인 것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다가 철이 들수록 자신의 뿌리를 알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학에 가서는 같은 한인학생들끼리 어울려 다니거나 한국방문이나 한국어 배우기를 통해, 자신은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메리칸이라고 생각했다가 코리안-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찾는 예도 많이 보게 된다. 이런 모습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국에 삶의 터전을 가진 우리들은 코리안도 아니고 아메리칸도 아닌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그리고 그 바탕은 모국어인 한국어를 아름답게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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