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A 사회사업과 졸업반 최병태씨
“실직의 아픔을 봉사로 달랬어요”
56세 늦깍이 졸업이 새변신 출발점
영어 못하는 한인 돕는 기쁨으로 살터
‘잘 나가던 은행 지점장에서 노인의 벗으로’
한국에서 한때 화려한 은행가로 떵떵거리며 살다가 실직의 나락에 떨어져 방황하던 한 한인이 실의를 딛고 일어나 노인들을 돕는 카운셀러로 변신해 잔잔한 감동적 스토리로 전해지고 있다.
UCLA 사회사업학과 졸업반인 최병태(56)씨는 6월부터 한인타운 노인아파트 두 곳에서 카운슬러로 근무한다. 1998년 IMF 사태로 29년 동안 몸담았던 은행을 떠난 뒤 5년 만에 봉사자로서의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 것이다.
최씨는 “평생 몸담았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 통지를 받은 IMF세대가 겪은 정신적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명문 광주일고와 한국외국어대학을 졸업한 최씨는 1970년 외환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근 30년의 세월을 무풍지대에 살았다. 1991년 지점장으로 승진한 뒤에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탄탄 대로를 달렸다. 그렇다고 돈만 아는 은행원으로 살지는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회사에 신우회를 조직해 소년소녀가장 돕기와 고아원 방문 등 사회봉사활동에도 앞장을 섰었다. 누가봐도 완벽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순탄하던 그의 삶도 IMF의 풍랑에 산산이 무너져 내린다.
1998년 12월 명예퇴직을 당한 그는 “사회가 나를 배신했다”며 원망으로 가득한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최씨는 “혼자 내버려졌다는 고독감과 아쉬움에 한동안 방황을 하던 중 문득 ‘그동안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지만 과연 그들이 진짜 힘들 때 내가 그들의 손을 잡아 주었던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날 이후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남은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은행원을 써 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실력 먼저 키우자고 생각한 그는 유학을 결심했고 1년 동안 유학을 준비했다. 그리고 2001년 9월 UCLA 사회사업학과에 당당히 입학했다.
그는 “대학에 들어온 뒤 듣기와 말하기 때문에 무척 고생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다행이 졸업까지 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졸업 후 한국에 돌아가려 했지만, 갈 곳이 없어 7가 맥도날드와 김방아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른들을 보면서 영어 못하는 이민사회 노인들을 도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은행에 30년 동안 있었지만 그 곳에서는 성공과 출세, 돈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보니 다른 세상이 있었다”며 “비록 지금도 퇴직금을 까먹으면서 살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처럼 행복한 건 없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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